어느새 9월이 되었습니다. 굳이 상기해 보자면 올해가 벌써 2/3나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번 목요일인 9월 7일은 24절기의 하나인 백로(白露)입니다. 백로는 흰 이슬이란 뜻으로, 이 시기쯤이 되면 밤 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죠. 아직 새에 관한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이미 오늘 글의 주제를 예측하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댕기가 매력적인 어느 쇠백로입니다. / GDW.45 on wikimedia commons
댕기가 매력적인 어느 쇠백로입니다. / GDW.45 on wikimedia commons

오늘 소개할 새는 백로(白鷺)입니다. 백로에 관해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우선은 백로의 정의를 확실히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백로'는 지난번 소개했던 백조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새들을 총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백로라 하면 왜가리과에 속하는 흰 새들을 말하는데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새들을 추려보면

  • 대백로 (Great egret)
  • 중대백로 (Eastern great egret)
  • 중백로 (Intermediate egret)
  • 쇠백로 (Little egret)
  • 눈백로 (Snowy egret)
  • 붉은백로 (Reddish egret)
  • 마다가스카르백로 (Dimorphic egret 또는 Madagascar egret)
  • 노랑부리백로 (Chinese egret)

정도가 있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8종의 백로 중 위의 세 종은 왜가리속에, 아래의 다섯 종은 백로속에 속하는데요. 크기를 제외하면 워낙 똑같이들 생겨서 구분하기 어려운 친구들이니, 이 글에선 잠시만 현대과학적 분류를 내려놓고 고대인의 마음이 되어 흰 새들을 전부 백로로 묶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들레 홀씨 같은 백로와 백로 같은 민들레 홀씨들입니다. / shell game, Andrea Westmoreland on Flickr민들레 홀씨 같은 백로와 백로 같은 민들레 홀씨들입니다. / shell game, Andrea Westmoreland on Flickr
민들레 홀씨 같은 백로와 백로 같은 민들레 홀씨들입니다. / shell game, Andrea Westmoreland on Flickr

백로의 주요한 특징은 몸에 비해 긴 목과 다리인데요.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이 새들은 긴 목과 다리를 사용해 물속을 걸으며 물고기를 사냥합니다. 여름이 되면 자라나는 화려한 장식깃 역시 백로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인데요. 이것은 아마 민들레 솜털과 닮았던 유년시절의 향수에 젖게 해주는 아이템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장식깃은 번식기의 자기 어필을 위해 자라나는 것인데요. 번식에 성공하면 민들레 솜털과 닮은 아가 백로들을 다시 볼 수 있으니 그렇게 크게 틀린 추측은 아닐 수도 있겠죠. 옛 사람들은 길고 가는 장식깃을 실에 비유하여, 백로를 사금(絲禽)이라고도 불렀던 모양입니다.


가마귀 싸호지 아니ᄒᆞᄂᆞᆫ 골에 白鷺입니다. / devra on Flickr
가마귀 싸호지 아니ᄒᆞᄂᆞᆫ 골에 白鷺입니다. / devra on Flickr

백로는 청렴결백한 것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굉장히 사랑한 새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물론 백로의 깃털이 워낙 하얗고, 하야면서도 하얗기 때문이었죠. 이 때문에 설의아(雪衣兒), 설로(雪鷺), 백조(白鳥), 백령사(白領鷥) 등 백로의 다른 이름엔 흰색을 의미하는 한자가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검은 깃털을 가진 까마귀의 경우 백로와는 대조되는 존재로 그려지곤 했는데요.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영천 이씨(永川 李氏)의 '가마귀 싸호ᄂᆞᆫ 골에 白鷺야 가지마라'는 시조일 것입니다. 물론 이와 반대로, '가마귀 검다 ᄒᆞ고 白鷺야 웃지 마라'며 클리셰를 비튼 이직(李稷)의 시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조에 관한 백로와 까마귀의 생각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에 백로와 까마귀의 수만큼 그들의 마음 빛도 다양한 것 아니겠습니까.


길쭉한 세 개의 생각과 동그란 아홉 개의 생각입니다. / <삼사도(三思圖)>, 여기(呂紀), 명나라; <구사도(九思圖)>, 임이(任頤), 청나라길쭉한 세 개의 생각과 동그란 아홉 개의 생각입니다. / <삼사도(三思圖)>, 여기(呂紀), 명나라; <구사도(九思圖)>, 임이(任頤), 청나라
길쭉한 세 개의 생각과 동그란 아홉 개의 생각입니다. / <삼사도(三思圖)>, 여기(呂紀), 명나라; <구사도(九思圖)>, 임이(任頤), 청나라

백로는 옛시조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진 새인데요. 백로를 뜻하는 로(鷺)/사(鷥)는 각각 로(路)/사(思)와 발음이 일치하기 때문에, 제목에 동음이의를 사용한 그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 마리의 백로를 그리면 이는 일로(一路)가 되어 한 길로 쭉 나감을 의미하고, 세 마리의 백로를 그리면 삼사(三思)가 되어 군자의 세 가지 생각을 의미하죠. 그리고 이것이 다시 세 배가 되면 구사(九思)가 되는데, 이는 논어 계씨편(論語 季氏篇)에 나온 구절인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君子有九思)'을 아홉 마리 백로로 나타낸 것입니다.


왼쪽부터 황로, 흑로, 적로의 두 모습들입니다. / 왼쪽 위부터 아래로, Shagil Kannur, Raman Kumar, Glen Fergus, 〃, Googie man on Wikimedia commons, Len Blumin on Flickr왼쪽부터 황로, 흑로, 적로의 두 모습들입니다. / 왼쪽 위부터 아래로, Shagil Kannur, Raman Kumar, Glen Fergus, 〃, Googie man on Wikimedia commons, Len Blumin on Flickr왼쪽부터 황로, 흑로, 적로의 두 모습들입니다. / 왼쪽 위부터 아래로, Shagil Kannur, Raman Kumar, Glen Fergus, 〃, Googie man on Wikimedia commons, Len Blumin on Flickr
왼쪽부터 황로, 흑로, 적로의 두 모습들입니다. / 왼쪽 위부터 아래로, Shagil Kannur, Raman Kumar, Glen Fergus, 〃, Googie man on Wikimedia commons, Len Blumin on Flickr

지금까지 백로의 흰색에 대해 얘기했는데, 사실 백로라고 전부 하얗지는 않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노랗고 검은 황로와 흑로는 분류학적으론 백로속에 속하는 새인데요. 지난번에 소개했던 황로는 평소엔 하얗지만 번식기엔 노래지고, 흑로는 이름 그대로 일 년 내내 새까만 백로입니다. 또한 이름부터 모순적인 붉은백로는 붉은 머리에 검은 몸을 가지고 있어 적로라고도 불리죠. 그런데 더 혼란스러운 것이, 붉은백로와 흑로는 백색형 개체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흑로일까요, 적로일까요, 백로일까요. 여기부턴 철학의 문제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네요. 백조와 흑조에 이어 두 번째로 맞는 이 블로그의 위기 앞에서 저는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고고한 백로의 고고한 모습입니다. / Navaneeth Krishnan S on wikimedia commons
고고한 백로의 고고한 모습입니다. / Navaneeth Krishnan S on wikimedia commons

오늘은 백로를 맞아 백로에 관해 소개해보았습니다. 언젠가 한국의 24절기에 관한 블로그를 개설하여, 반대로 백로를 맞아 백로에 관해 소개하는 날은 오지 않을까 살짝 생각해보며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새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