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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찌름이

Flowerpiercer, 적극적 꿀도둑

꽃과 새가 함께 있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자연의 두 예쁜이들은 수많은 그림과 노래 속에서 함께 그려지며 그 아름다움을 뽐내곤 했죠.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꽃과 함께 있는 새가 보고싶어져서, 오늘은 꽃과 관련된 어느 새들에 관한 포스트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꽃찌름이 중 하나인 글로시꽃찌름이(glossy flowerpiercer)가 멋진 옆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PEHart on Flickr
꽃찌름이 중 하나인 글로시꽃찌름이(glossy flowerpiercer)가 멋진 옆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PEHart on Flickr

이번 포스트에서는 풍금조과(Thraupidae) 디글로사속(Diglossa)에 속하는 18종의 새들에 관해 소개해보겠습니다. 이 새들의 영명은 flowerpiercer인데, 이와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은 말 그대로 꽃을 찌르는 습성 때문이죠. 사실 flowerpiercer에 대한 적절한 한국어 명칭이 없기 때문에 이 친구들의 이름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이에 관해 꽃찌름이, 꽃찌름새, 화척조, 꽃송곳새, 플라워피어서, 꽃꽂이, 꽃뿌수는새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는데요. 본 포스트에서는 가장 직관적인 꽃찌름이를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금 찔레꽃 같은 느낌도 나는 것이 꽤 귀여운 이름입니다.


그럼 이어서 꽃찌름이들이 왜 꽃을 찔러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볼 텐데요. 먼저 우리는 이 새들이 못 먹는 꽃 찔러나 보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꽤나 합리적인 추측인데요. 꽃찌름이의 부리는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꽃 속으로 아무리 깊이 머리를 디밀어보아도 꿀에 닿기가 힘듭니다. 꿀 섭취를 포기하고 저 꿀은 어차피 신맛이었을 것이라며 합리화하는 대신, 꽃찌름이는 꽃 아랫부분을 찌른다는 훌륭한 대안을 찾아냈죠.


왼쪽부터 각각 잿빛꽃찌름이(slaty flowerpiercer)의 암컷과 수컷이 뾰족한 부리를 뽐내고 있습니다. / Victor, Francesco Veronesi on Flickr왼쪽부터 각각 잿빛꽃찌름이(slaty flowerpiercer)의 암컷과 수컷이 뾰족한 부리를 뽐내고 있습니다. / Victor, Francesco Veronesi on Flickr
왼쪽부터 각각 잿빛꽃찌름이(slaty flowerpiercer)의 암컷과 수컷이 뾰족한 부리를 뽐내고 있습니다. / Victor, Francesco Veronesi on Flickr

꽃을 찌른다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는 꽃찌름이의 부리는 그 형태 역시 독특합니다. 얼핏 보기에 꽃을 찌르는 것은 후크처럼 휘어있는 윗부리일 것 같은데요. 사실 이 윗부리는 꽃을 잡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며, 꽃을 직접 찌르는 것은 뾰족한 아랫부리입니다. 그리고 끝이 갈라진 꽃찌름이의 혀는 부리로 낸 구멍으로 꿀을 먹는 데에 굉장히 유용하죠. 꽃찌름이의 학명에서 diglossa(δί+γλῶσσα)는 두 혀라는 의미인데, 이는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꽃찌름이의 혀를 나타냅니다.


방금 식사를 마친 듯한 노랑얼굴직박구리입니다. / coniferconifer on Flickr
방금 식사를 마친 듯한 노랑얼굴직박구리입니다. / coniferconifer on Flickr

동박새나 직박구리도 꽃찌름이와 같이 꿀을 섭취하는 새들인데요. 이 새들은 꿀을 먹으며 온 부리와 얼굴에 꽃가루를 묻혀 꽃들의 수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꽃찌름이는 꽃의 아랫부분을 찌르기 때문에, 얼굴에 꽃가루를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꿀만 쪽 빼먹고 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꿀을 먹으면서 수분은 도와주지 않는 동물들을 꿀도둑(nectar robber 또는 nectar stealer)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어감은 비슷합니다만 밥도둑과는 좀 다른 것입니다.


왠지 눈에서 시름이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 Panegyrics of Granovetter on Flickr
왠지 눈에서 시름이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 Panegyrics of Granovetter on Flickr

꿀을 먹는 꽃찌름이는 당연하게도 꿀을 먹는 다른 새들과 먹이 경쟁을 해야 합니다. 꽃찌름이는 남미와 중미에 주로 서식하는데, 남미에는 꿀을 먹는 것으로 유명한 벌새가 있죠. 벌새는 워낙 작은 새다 보니 다른 새와 무슨 경쟁이 될까 싶습니다만, 꽃찌름이도 꽤나 작은 새이기 때문에 먹이와 영역을 두고 열심히 벌새와 경쟁해야 합니다. 작은 꽃찌름이들은 영역의식이 강한 벌새나 자신보다 큰 꽃찌름이에게 공격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이 새들은 먹이를 구할 때가 아니면 빽빽한 나뭇잎이나 가지 사이에 숨어 자신보다 더 큰 상대를 피한다고 합니다.


왐냠 / Calderonfrancisco on Flickr
왐냠 / Calderonfrancisco on Flickr

오늘은 꽃을 찌르는 귀여운 꿀도둑들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꽃의 본체를 직접 공략하는 꽃찌름이의 습성은 신기합니다만, 꽃찌름이들에게 찔린 꽃들의 심정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언젠가 구멍난 꽃들과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그 내용은 이 포스트에 첨부하기로 하며, 오늘의 글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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