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짤방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넌센스 퀴즈 아님

날은 제법 풀렸지만 아직 세상이 영 뒤숭숭한 느낌이라, 집 밖에 나가기가 꺼려지는 시절인데요. 집 안에만 있다 보면 왠지 기분도 가라앉고 몸이 움츠러드는 분들 많으시지 않을까 합니다. 살면서 움츠러들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제일 좋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든 즐겁게 이겨 낼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여러분이 아무리 움츠러들어 작아진 기분이 든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작아질 수는 없을 정도로 작은 새들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것은 위의 세 짤입니다. 각각의 짤은 자신을 '지구에서 가장 작은 새인 토파즈벌새'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순순씨또', '기네스에 오른 제일 작은 새 오목다리종달새'라고 소개하고 있는데요. 얼핏 봐도 이 세 새는 각각 다른 종이기 때문에, 하늘 아래 이 세 짤이 함께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 새 중 어느 새가 가장 작은지를 겨뤄 보아야 할 텐데요. 물론 우리는 사실 저 새들이 작은 새인 것이 아니라, 사진에는 손만 보이는 인간들이 세상에서 제일 큰 인간일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첫 번째 '토파즈벌새'는 인도의 미니어처 페이퍼 커팅 아티스트인 Nayan & Vaishali의 작품입니다. 원출처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이 올라온 것은 18년 6월이죠. 또한 두 번째의 '순순씨또'는 미국에 거주 중인 불가리아 출신 미니어처 아티스트 Ina Malinik의 작품인데요. 이 사진은 19년 2월 해당 작품의 판매 링크에 처음 게시되었는데, 지금은 해당 링크에서 사진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작가의 페이스북을 찾아가 보면 이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의 제작 과정까지 엿볼 수 있죠.


오늘의 짤 중 가장 골때리는 것은 역시 세 번째의 분홍 새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짤은 늦어도 2000년대 초반부터는 한국의 인터넷을 떠돌던 것으로 보이며, 원출처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혹시 알고 계시다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이 새는 부리가 검고 뒷목이 노르스름하며 꽁지가 검고 배가 흰 것으로 볼 때, 이 링크의 분홍색 제품과 아주 가까운 종인 것 같은데요.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이 새는 위의 두 새와 마찬가지로 모형이라는 점이며, 혹시나 이게 진짜 새라면 블로그 접도록 하겠습니다.


붉은토파즈벌새의 정면도입니다. 녹색 멱이 눈부십니다. / © Paul Cools (CC BY-NC)붉은토파즈벌새의 측면도입니다. 붉은 코트가 매력적입니다. / © vanhoutan (CC BY)

오늘의 새들이 진짜 새가 아니라 미니어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이 작품들의 원본이 되는 새에 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사진의 새는 붉은토파즈벌새(crimson topaz)입니다. 토파즈벌새란 이름은 붉은토파즈벌새와 불꽃토파즈벌새(fiery topaz)을 묶어 부르는 말이니,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정확한 이름도 아니었죠. 붉은토파즈벌새는 수컷에게만 긴 꼬리가 있기 때문에, 수컷의 몸길이는 20cm를 넘는 반면 암컷의 몸길이는 14cm 정도인데요. 그렇다면 오늘 사진의 미니어처는 수컷의 모습을 본떴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인간 손과의 크기 차이는 이 정도입니다. / © Mike Leveille (CC BY-NC)

두 번째 사진의 새는 검은머리박새(black-capped chickadee)입니다. 이름처럼 새까만 머리가 아주 매력적인 동그란 새이죠. 이 동그라미들은 벌새와 달리 암수의 겉모습이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원작자에게 문의해보지 않고서야 육안으론 미니어처의 암수를 구분할 수 없겠습니다. 검은머리박새는 몸길이가 12~15cm 정도로, 붉은토파즈벌새 못지않게 작은 새인데요. 몸길이도 비슷하고, 부리와 꼬리를 뺀 몸통만 비교해 보아도 두 새의 크기는 고만고만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과연 이 둘 중 어떤 새를 세상에서 제일 작은 새로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의 분홍 새는 이 새와 근연종으로 보입니다. / normanack on Flickr

그냥 지나가면 아쉬우니 굳이 세 번째 사진의 새에 관해서도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 모형새는 위의 두 새와 달리 특정 종의 모습을 본뜨지는 않았는데요. 그렇다면 도대체 오목다리종달새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는지, 마크 클램버드 박사는 실존하는 사람인지, 처음 이 가짜 자료를 만든 사람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일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사실 이 새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던 중 가장 놀라웠던 순간은, 국내의 모 지자체 전시관 및 배포 자료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오목다리종달새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가 아닌가 싶은데요. 마침 제 삶의 터전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니, 도민으로서의 의리로 이 포스트를 마치고 문의를 넣어야겠습니다.


날고 있는 아주 작은 암컷 콩벌새입니다. / Sharp Photography(https://www.sharpphotography.co.uk/)심지어 수컷은 암컷보다 조금 더 작다고 합니다. / Sharp Photography(https://www.sharpphotography.co.uk/)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드디어 세상에서 정말로 제일 작은 새를 발표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콩벌새(bee hummingbird)인데요. 이름에 벌도 들어가고 콩도 들어가다니 정말 작은 새이긴 한가 봅니다. 콩벌새의 몸길이는 5.5cm인데요. 가까운 곳에 자가 있다면 잠시 글 읽기를 멈추고, 5.5cm가 얼마나 작은지를 직접 측정해 보신 후 이 새의 자그마함을 절절하게 실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순순씨또(zunzúncito)는 콩벌새의 스페인어 이름인데요. 순순(zunzún)은 벌새의 날갯짓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라고 하니, 우리는 순순씨또를 작은 붕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은 친구들도 번식기가 되면 수컷의 뺨과 목이 붉은 빛을 띱니다. / © Josh Vandermeulen (CC BY-NC-ND)머리도 붉은 빛을 띱니다. 광택 있는 깃털은 빛을 어떻게 받느냐도 정말 중요하지요. / © Josh Vandermeulen (CC BY-NC-ND)

오늘은 아주 작은 새들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사기꾼 나부랭이들 때문에 까딱하면 속아 넘어가기 쉬운 시대입니다. 생판 거짓 정보를 진실이라 우기는 것은 그나마 눈치채기 쉬운데, 진실을 조금 섞어서 그럴듯하게 만든 거짓 정보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의 짤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작은 새가 벌새라든가, 그 작은 새의 이름이 순순씨또라는 등의 미량의 진실이 들어있긴 했으니 말이죠. 안 그래도 불안해지기 쉬운 시절, 범람하는 거짓 정보로부터 자신을 지켜 진실과 안정을 얻는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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