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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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둥오리

이번 주의 금요일은 밸런타인데이입니다. 밸런타인데이는 누군가에겐 초콜릿의 날일 것이며, 누군가에겐 연인의 날일 텐데요. 잠시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저는 얼마 전 마지막 사랑니를 발치하였습니다. 갖고 있던 사랑을 전부 적출해 낸 제가 사랑에 관한 글을 얼마나 잘 쓸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오늘은 조금 독특한 한 쌍의 커플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것은 서로 다정한 두 새입니다. 특히 왼쪽의 큰 새는 오른쪽의 작은 새에게 아주 관심이 많아 보이죠. 같은 종의 새도 암수 간에 생김새나 크기가 다른 경우는 많지만, 이 두 새는 각각 기러기와 오리의 일종으로 보이니 같은 종은 아닐 텐데요. 그렇다면 무슨 일로 이 두 새는 이렇게 친밀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 목격된 것일까요. 우선 출처를 밝혀 보자면 이 사진은 2010년 4월, 영국 글러스터셔주(Gloucestershire)에서 슬림브릿지 습지센터(Slimbridge Wetland Centre) 관계자가 촬영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즉 이 새들의 사랑은 벌써 10년째 인터넷 세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야생의 럽어덕입니다. / milo bostock on Flickr야생의 러버덕입니다. / russellstreet on Flickr

슬림브릿지 습지센터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 기러기는 오리를 쫓아다니며 격렬한 구애를 펼쳤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오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오리든 기러기든 상관없이, 전부 잠재적 경쟁자로 여긴 것인지 맹렬히 쫓아 버렸다고 합니다. 오리도 이 기러기가 딱히 싫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자신을 따라다니는 기러기를 피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어떤 기사는 이 사진에 'Love-a-duck'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요. 오리에 대한 기러기의 사랑을 나타내는 동시에 물에 띄우는 오리 모양의 장난감인 러버덕(rubber duck)과 비슷하게 들리는 언어유희를 의도한 제목이죠.


뒤에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 Andrea Kreuzhage (CC BY-NC)

오늘의 두 새는 각각 줄기러기(bar-headed goose)와 청둥오리(mallard)입니다. 이 사진이 촬영된 것이 번식기임에도 불구하고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 사진 속 청둥오리는 암컷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요. 줄기러기는 겉모습으로는 암수 구분이 어렵지만, 구애를 하고 경쟁자를 쫓는 행동 등으로 볼 때 수컷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청둥오리에 관해서는 이미 포스트를 한 번 작성한 적이 있으니,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줄기러기에 관해 주로 소개해 볼 텐데요. 줄기러기는 몸길이가 71~75cm 정도 되는 기러기입니다. 한국 이름과 영어 이름에 전부 줄(bar)이 들어가는데, 이는 머리의 검은 줄무늬 때문이죠.


어디까지 가세요? / © Tony Palmer (CC BY-NC)

줄기러기의 학명인 Anser indicus에서 indicus는 고대 그리스어 ἰνδικός (indikos)가 유래로, 인도와 관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새들은 한국에서 인도기러기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줄기러기는 러시아 남부나 중국 서부 등 중앙아시아 또는 인도 북부에서 번식하고, 미얀마나 인도 등에서 겨울을 나기 때문에 인도에서 볼 수 있는 기러기입니다. 또한 인도 신화의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타고 다니는 새 함사(हंस)도 줄기러기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죠. 줄기러기의 번식지와 월동지를 이어 보면 중간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다니기 때문에, 줄기러기는 세상에서 제일 높이 나는 새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 친구들이 어떻게 이렇게 높이 날아다닐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포스트에서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떠날지 머무를지 고민하느라 걸을지 헤엄칠지도 정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 Hans De Bisschop on Flickr

오늘의 줄기러기는 영국에서 관찰되었는데, 막상 줄기러기의 서식지를 살펴보면 유럽이 없습니다. 영국에서 관찰되는 줄기러기는 대부분 사육 중이던 개체가 탈출하여 자리 잡은 것이며, 어쩌다 혼자 영국에 찾아가버린 길 잃은 새도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줄기러기는 길 잃은 새로 가끔 목격되기도 합니다. 영국의 청둥오리는 겨울에도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고 1년 내내 머무는 텃새인 경우가 많은데요. 그렇다면 오늘의 줄기러기는 청둥오리처럼 겨울에도 이곳에 머물렀을지, 아니면 다른 기러기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났다 돌아왔을지 궁금합니다.


작고 소중하고 뽀송뽀송한 아가 오리들입니다. / Michele Dorsey Walfred on Flickr

줄기러기와 청둥오리는 서로 다른 종인데, 과연 둘 사이에서도 보송보송한 새끼가 태어날 수 있을까요. 이 새들은 같은 오리과에 속하기 때문에, 확률은 아주 낮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만약 둘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난다면, 우린 그 보송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워낙 사례가 적어 고정된 명칭이 없으니 줄둥오리, 청기러기, 줄둥러리, 청기오기 등 내키는 대로 불러도 별 문제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줄기러기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청둥오리와의 가정을 꾸리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더 가능성이 높은 방법도 있습니다. 청둥오리가 다른 수컷 청둥오리와 교미하고 낳은 알을 둘이 함께 키우는 것인데요. 어쨌거나 같은 물새이니, 줄기러기는 아기 청둥오리들의 좋은 아빠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목의 무늬 때문에 옆에서 보면 목이 굉장히 가늘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 © Elizabeth Byers (CC BY-NC)

오늘은 사랑 넘치는 한 쌍의 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후의 후속 기사나 정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저 새들의 근황은 알 수 없었지만, 그 후로도 쭉 잘 지내고 있길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고 달콤한 밸런타인 보내시길 바라며, 오늘의 포스트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두 새가 2세를 봤기를 간절히 바라는 분들이 계실까 하여, 그런 분들께 희망이 될 만한 이집트기러기와 청둥오리 그리고 혹고니와 거위의 2세 사진이 있는 링크 마지막으로 첨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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