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폴더

cilla

당신의 꼬리는 안녕하십니까

설 연휴가 끝나갑니다. 새해 복은 올 한 해를 보내기에 부족함 없이 충분히 받았는지, 떡국은 더 먹지 않아도 되는지 등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예고했던 대로, 새의 꼬리와 관련된 얘기를 해 보도록 할 텐데요. 어쩌다보니 설 연휴의 끄트머리에 새의 끄트머리에 관해 소개하게 되었으니, 잘 끼워 맞춰 보면 설 특집까진 아니지만 연휴 특집이라고는 할 수도 있겠습니다.


길쭉한 알락할미새입니다. 꼬리가 움직이는 모습은 할미새 단독 포스트를 위해 아껴 두려 하니, 지금은 마음의 눈으로 흔들리는 꼬리를 봐 주시길 바랍니다. / Hobbyfotowiki on Wikimedia commons

오늘 소개할 것은 새의 학명에서 꼬리를 뜻하는 유사 라틴어 단어 'cilla'인데요. 이 단어를 알기 위해선 우선 할미새에 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할미새의 영명인 wagtail은 흔듦을 뜻하는 wag와 꼬리를 뜻하는 tail이 합쳐진 것인데요. 조금 더 귀엽게 말해 보자면 꼬리 붕붕이 정도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이름처럼 할미새는 꼬리를 쉬지 않고 까딱까딱 흔드는 새인데요. 그렇다면 할미새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 motacilla에도 꼬리를 흔든다는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죠. motacilla는 움직이는 자를 뜻하는 motator에 작다는 의미를 더하는 접미사 -illa가 붙어 "little mover"를 뜻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어떤 생물학자는 라틴어로 mota가 움직인다는 뜻이니, cilla가 꼬리를 뜻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말았습니다.


잔상처럼 찍힌 사진에서도, 황여새의 샛노란 꼬리 끝은 눈에 확 띕니다. / Nicolás Tamargo (Public domain)

이 사건 전까지 cilla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실제 라틴어로 꼬리를 뜻하는 단어는 cauda입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오역으로 인해, cilla는 라틴어인 척 다른 새의 학명에도 들어가게 되었죠. 그런 뜻에서 이 밑으론 학명에 cilla가 들어가는 새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도록 하겠는데요. 첫 번째로 소개할 새는 지난주에도 소개했던 여새들입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비단을 뜻하는 βόμβυξ(bombyx)와 cilla가 합쳐진, 부드러운 꼬리가 자랑인 새들이죠.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βόμβυξ는 비단뿐만 아니라 그 생산자인 누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누에나방속에 속하는 나방들의 학명에는 bombyx가 들어가니, 곤충을 보는 것을 꺼리는 분들께는 검색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세운 흰 꼬리가 셔틀콕 같습니다. / Susanne Nilsson on Flickr

두 번째로 소개할 새는 흰꼬리수리입니다. 영명인 white-tailed eagle도 말 그대로 '흰 꼬리 수리'이며, 학명인 Haliaeetus albicilla에서 albicilla는 라틴어로 흼을 뜻하는 albus와 cilla가 합쳐진 것입니다. 사실 수리 중에는 흰꼬리수리 외에도, 흰머리수리참수리와 같이 하얀 꽁지깃을 가진 수리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친구에게 흰꼬리수리란 이름이 붙은 것일까요. 그건 아마 흰꼬리수리는 하얀 부위가 꽁지깃뿐이며, 전신의 다른 부위는 갈색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흰머리수리는 머리가 하얗고, 참수리는 날개 일부와 다리 등이 하얗기 때문에 '흰(꼬리+α)수리'가 되고 마니, 꼬리만 흰 흰꼬리수리가 이 이름에 제일 어울리긴 하죠. 흰꼬리수리는 한국 해양 경찰의 상징물이기도 한데, 이건 언젠가의 해양 경찰의 날에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적갈색엉덩이풀꼬리치레의 엉덩이는 적갈색임을 알 수 있습니다.  / © Imran Shah (CC BY-SA)

세 번째는 땅꼬리치레과 Laticilla속에 속하는 두 새입니다. Laticilla는 라틴어로 넓다는 의미의 latus와 cilla가 합쳐진 것인데요. 도대체 얼마나 넓은 꼬리를 가지고 있나 싶어 사진을 찾아보면, 과장 좀 섞어서 자기 몸만 한 꼬리를 갖고 있는 걸 보니 이런 학명이 붙을 만도 합니다. 이 두 새는 딱히 통용되는 한국 명칭이 없기 때문에, 이 포스트에선 영명을 번역한 명칭을 사용하려 하는데요. 영명인 rufous-vented grass babbler와 swamp grass babbler를 각각 번역해 보면 적갈색엉덩이풀꼬리치레와 늪풀꼬리치레 정도가 되겠습니다. babbler의 번역어로 꼬리치레를 선택하여 얼핏 이름에 꼬리가 들어가는 것 같긴 하지만, 저런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것 치곤 이름에 꼬리가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흰꼬리딱새보단 조금흰꼬리딱새 정도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 Subhajit Roy  (CC BY-NC-ND)

네 번째로 소개할 새는 흰꼬리딱새(red-throated flycatcher 또는 taiga flycatcher)입니다. 유라시아 북쪽에서 번식하고 동남아에서 겨울을 보내는데, 봄가을이면 드물게 한국을 지나는 한국의 나그네새이기도 하죠. 흰꼬리딱새의 학명은 Ficedula albicilla으로, 흰꼬리수리와 같은 albicilla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흰 꼬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데요. 이 새의 꼬리는 얼핏 보기엔 검은색이지만, 잘 살펴보면 가장 바깥쪽의 깃털이 흰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애매한 기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흰색이 없는 것은 아니니 애매하게 납득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꼬리도 꼬리인데 겨드랑이가 특히 불타고 있는 것 같은 수컷입니다. / © Jon McIntyre (CC BY-NC)수컷의 꼬리는 참나리색, 암컷의 꼬리는 개나리색을 띱니다. / © Paul Reeves (CC BY-NC)

다섯 번째로 소개할 새는 American redstart인데요. 딱새의 영명이 Daurian redstart이니, 더 나은 이름이 생각날 때까지는 미국딱새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redstart에서 start는 고대 영어에서 꼬리를 뜻하는 steort가 변한 것으로, 이 새는 이름부터 자신이 붉은 꼬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학명인 Setophaga ruticilla에서 ruticilla 역시 라틴어로 붉음을 뜻하는 rutilus와 cilla가 합쳐져 붉은 꼬리를 가지고 있음을 자랑하고 있죠. 이 정도로 자랑을 하는 걸 보면 꼬리 전체가 시뻘게야 할 것 같지만, 흰꼬리딱새와 마찬가지로 미국딱새의 꼬리도 일부분만 붉은색을 띱니다. 미국딱새는 수컷은 검정색과 주황색, 암컷은 갈색과 노란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붉은 꼬리가 들어가는 이름은 색의 대비가 더 강한 수컷을 보고 지은 것으로, 새까만 깃털 사이의 주홍빛 깃털은 마치 불이 붙은 것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머리가 검고 꼬리가 희며 역동적인 웃는갈매기입니다. / Jarek Tuszyński on Wikimedia commons

드디어 마지막 차례인 웃는갈매기(laughing gull)를 소개할 때가 왔습니다. 이 새의 학명은 Leucophaeus atricilla로, atricilla는 라틴어로 검음을 뜻하는 ater와 cilla가 합쳐져 검은 꼬리를 가졌음을 뜻하죠. 그런데 웃는갈매기의 꽁지깃은 순백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새하야며, 검은색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몹시 당황스럽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른 검은 부위를 찾아보면, 웃는갈매기의 여름깃은 머리가 새까맣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여기서 잠시 검은머리오리(black-headed duck)의 학명인 Heteronetta atricapilla를 살펴보면, atricilla와 아주 유사한 놈이 들어있습니다. atricapilla는 라틴어로 검음을 뜻하는 ater와 머리카락을 뜻하는 capillus가 합쳐진 것인데, 어떻게 봐도 웃는갈매기의 학명엔 이게 들어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죠. 웃는갈매기에 학명을 붙인 것은 이명식 명명법을 확립한 스웨덴의 박물학자 린네(Carl Linnaeus)인데요. 그 업적이 대단한 것과는 별개로 이 새의 학명을 붙일 때는 자신이 atricapilla라 기록해 둔 것을 atricilla라 잘못 봤던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자기 학명이 이렇게 붙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웃는갈매기도 분명 정색할 거라 봅니다.


이름이 언급되었으니 사진을 첨부하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 머리가 아주 검은 검은머리오리 수컷 사진 첨부합니다. / © Observaves San Rafael (CC BY-NC)

오늘은 새의 꼬리와 관련된 단어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학명도 결국 사람이 붙이는 것이다 보니 오류나 언어유희 등이 들어가기도 하고, 후속 연구에 따라 분류가 바뀌면서 학명이 바뀌는 일도 있습니다. 또한 학명을 붙이는 과정에서 라틴어 어법이 틀리는 일도 부지기수이죠. 학술적인 용어인 학명마저 이 지경이면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어느 정도 오류가 있다곤 하더라도, 학명은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이름입니다. 처음 접하는 정보가 아무리 권위 있어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 번쯤은 그 내용을 분석하고 꼼꼼히 따져보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자는 것이 어쩌다 보니 이번 포스트의 결론이 되어 버린 것 같은데요. 다음주엔 조금 덜 비판적으로 사고해도 되는,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한 주제로 찾아오기로 약속하며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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