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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뱅뻐꾸기

Jacobin cuckoo, 다음 번 비가 언제쯤 내릴까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15세기 인도 시인 까비르의 시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달새의 머리는 / 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 그리고 비새의 생각은 / 다음 번 비가 언제쯤 내릴까 하는 것.' 갑자기 이와 같은 시구를 가져온 것은 내일로 다가온 2월 19일이 정월 대보름이자 우수(雨水)로, 달과 비가 있는 날이기 때문인데요. 이 시에는 '달새'와 '비새'라는 두 새가 나옵니다. 이 중 달새는 작년 추석에 소개한 추카를 얘기하는데요. 그렇다면 비새는 어떤 새인지 궁금해지셨을 분들을 위하여,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비새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검은 깃털의 녹색 광택이 매력적입니다. / Shanaka Aravinda on Flickr

오늘 소개할 새는 자코뱅뻐꾸기입니다. 몸길이 34cm 정도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뻐꾸기와 비슷한 크기의 새죠. 우리가 아는 뻐꾸기가 새매를 모방하기 위해 얼룩덜룩한 배를 가진 것과 달리, 자코뱅뻐꾸기는 아주 하얀 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몸의 등쪽과 날개는 검은색인데, 날개에는 하얀 무늬가 있어서 전신이 강렬한 흑백의 대비를 보여주죠. 길고 검은 머리깃 역시 자코뱅뻐꾸기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까맣고 하얗습니다. / Imran Shah on Flickr까맣고 하얗습니다. / 	© copper까맣고 하얗습니다. / <St. Louis Bertrand>, Francisco de Zurbarán, 1640, Museo de Bellas Artes de Sevilla

이어서 알아볼 것은 이 새의 이름과 학명(Clamator jacobinus)에 자코뱅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인데요. 프랑스에선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을 자코뱅이라 불렀는데, 자코뱅뻐꾸기의 까맣고 하얀 깃털이 그들의 옷과 닮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옷은 자코뱅뻐꾸기의 깃털과 배색이 아주 유사하지만, 솔직히 사전지식이 없다면 그 유래를 알 길이 없죠. 자코뱅뻐꾸기는 알락뻐꾸기(pied cuckoo) 또는 알락머리깃뻐꾸기(pied crested cuckoo)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론 이처럼 더 직관적인 이름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비를 몰고 오고 있는 자코뱅차타카입니다. / Koshy Koshy on Flickr

자코뱅뻐꾸기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 미얀마, 인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새입니다. 인도에서 1년 내내 생활하는 자코뱅뻐꾸기도 있지만, 일부는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나고 여름이면 인도로 가죠. 자코뱅뻐꾸기가 인도에 도착하는 것은 마침 인도의 우기인 몬순이 시작될 즈음입니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 자코뱅뻐꾸기는 비가 찾아올 징조로 여겨지게 되었고, 힌두 신화에 나오는 비의 새 차타카(चातक)와 동일시되기도 하였죠.


비새가 다음 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 © Markus Lilje

힌두 신화에 따르면 차타카는 비를 마시는 새로, 머리 꼭대기에 부리가 달린 독특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 마시기에 아주 수월한 구조일 텐데, 자코뱅뻐꾸기의 뾰족한 머리깃이 이와 같은 묘사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타카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제외한 다른 물은 결코 마시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그 목마름을 상상해 보면 비가 오지 않는 동안 머릿속이 다음 번 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지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신화 속의 차타카가 아닌 현실의 자코뱅뻐꾸기는 어떻게 수분을 섭취할까요. 만약 자코뱅뻐꾸기도 차타카처럼 빗방울만을 마신다면, 부리가 머리 꼭대기에 달려있지 않아 물 마시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자코뱅뻐꾸기는 차타카와 달리 물을 가리지 않는 모앙인데요. 위 영상에선 자코뱅뻐꾸기가 전혀 거리낌 없이 고인 물을 춉춉 마시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라는 것이 명확한 주기성을 가지고 내리는 것도 아니니, 신화 속의 존재가 아닌 이상 비 내리는 날에만 물을 마시는 새가 생존하긴 어렵겠죠.


머리깃이 아주아주 돋보이는 자코뱅뻐꾸기 사진으로 글 마칩니다. / Derek Keats on Flickr

오늘은 비와 함께 찾아오는 비새 자코뱅뻐꾸기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봄비가 내리는 우수와 보름달을 보는 정월 대보름이 겹치고 말았는데요. 둘 중 무엇도 놓치면 아쉬우니 두 날이 잘 얘기해 보고 원만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낮에는 보슬보슬한 봄비가 내리고 밤에는 구름이 걷혀 달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지금부터는 정월 대보름에 팔 더위를 준비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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