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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둥오리

Mallard, Big and Handsome but....

※다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번식기의 청둥오리 수컷입니다. / Duck Lover on Flickr
번식기의 청둥오리 수컷입니다. / Duck Lover on Flickr

오늘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새인 청둥오리에 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한국의 겨울철새였던 청둥오리는, 요즘은 사실상 텃새화되어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새가 되었죠. 청둥오리라는 이름은 번식기 수컷의 머리가 광택이 나는 녹색으로 변하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한 쌍의 청둥오리입니다. / Charles James Sharp (http://www.sharpphotography.co.uk/)
한 쌍의 청둥오리입니다. / Charles James Sharp (http://www.sharpphotography.co.uk/)

번식기가 되면 청둥오리는 일부일처의 짝을 이루고, 산란기 전까지의 몇 개월간을 함께 지냅니다. 산란기가 되어 암컷이 알을 낳고 품기 시작할 때 수컷은 암컷을 떠납니다. 암컷은 한 번에 6개에서 13개의 알을 낳으며,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것은 암컷의 몫입니다.


귀여운 새끼 청둥오리들이 엄마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 The Hamster Factor on Flickr
귀여운 새끼 청둥오리들이 엄마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 The Hamster Factor on Flickr

이렇게 짝을 지었던 수컷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귀여운 자손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번식기에 다른 암컷들과 짝을 짓지 못한 수컷입니다. 번식 탈락의 위기에 다다른 수컷은 혼자, 또는 여럿이 무리를 지어 암컷을 공격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얘기군요.


위 영상에서 여러 마리의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을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컷이 이와 같이 암컷을 공격하는 것은, 결국 교미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수컷은 암컷을 집요하게 쫓아가며 목을 물거나 쪼아댑니다. 그 와중에 먼저 암컷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는 수컷들의 모습도 영상에 잘 나타나는군요. 그리고 암컷이 다치고 지쳐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되면 수컷은 말 그대로 암컷을 강간, 또는 윤간합니다.


수컷에게 공격받는 암컷 청둥오리입니다. / Ric Jackson on Flickr
수컷에게 공격받는 암컷 청둥오리입니다. / Ric Jackson on Flickr

위 영상의 암컷은 지상에서 쫓겼으니, 이제 암컷이 물속에서 수컷을 만난다면 일어날 일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컷은 암컷 위에 올라가 머리를 물속으로 누릅니다. 그리고 암컷이 숨을 쉬지 못해 기절하면 강간하죠.


번식 탈락 위기의 수컷들은 심지어 이미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까지 공격합니다. 암컷이 수컷으로부터 도망치는 동안, 새끼들이 수컷 청둥오리나 다른 천적의 공격을 받아 죽는 것도 그리 드물진 않은 일인 모양입니다.


청둥오리 수컷들이 공격하는 암컷은 대개 짝이 없이 혼자 있는 암컷들입니다. 번식에 성공한 수컷이라면 분명 번식에서 탈락한 수컷들보다 우수한 수컷일 것이고, 그런 수컷과 직접 경쟁해서는 이길 수 없는 약한 수컷들은 암컷을 공격하는 것이겠지요. 청둥오리 수컷은 짝이 없는 암컷이라면 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다른 종의 오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위 영상과 같이 닭과의 교미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성의 수컷 역시 강간합니다. 위 영상에선 수컷 청둥오리가 다른 수컷의 머리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수컷 청둥오리의 동성 간 강간은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청둥오리 전체 쌍의 약 20%는 동성의 두 수컷으로 이루어진 쌍이라고 합니다. 이 게이 청둥오리들은 다른 수컷을 강간하기도 하고, 번식기에는 암컷과 교미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수컷 청둥오리는 강간을 할 때 자식의 유무도, 종도, 성별도 가리지 않으며, 심지어 생사마저 가리지 않습니다. 수컷 청둥오리가 암컷 청둥오리의 시체를 강간하는 것은 그렇게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아마 수컷 청둥오리들이 원래 암컷을 기절시켜 강간하는 습성이 있고, 수컷 청둥오리의 공격을 받던 암컷이 기절을 넘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놀랍다면 놀라운 것이, 수컷 청둥오리가 죽은 수컷을 강간하는 것은 꽤 최근에야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Kees Moeliker가 수컷 청둥오리의 동성 간 시체성애 사례를 발표한 것으로 2003년 이그노벨상을 받았지요.


수컷 청둥오리와 그의 생식기입니다. / Glen Bowman on Flickr
수컷 청둥오리와 그의 생식기입니다. / Glen Bowman on Flickr

지금까지 번식 탈락 위기에서 나타나는 폭력성과 강간에 관해 얘기해보았는데요. 사실 번식에 성공한 일부 수컷 청둥오리들도 자신의 짝이 아닌 다른 암컷 오리와 외도, 또는 강간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청둥오리의 강간 습성에 관해 얘기하려면 같이 얘기해야 할 것이, 바로 청둥오리의 생식기입니다. 위 사진의 가시 달린 노란 스프링같이 생긴 것 말이죠. 대부분의 조류는 겉으로 드러나는 생식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청둥오리와 같은 일부 조류는 이런 생식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포유류의 음경과 역할이 비슷하지만 구조는 다르기 때문에 pseudo-penis, 또는 phallus라 부릅니다. 이 포스트에선 수컷 청둥오리의 외부 생식기를 팔루스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오리들의 성기 사진 및 영상을 아무 필터 없이 게시하는 것이 조금 걱정되는데요. 일단은 꽤 학술적인 목적이고, 제 블로그의 독자 중 오리과에 속하시는 분은 없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생식기 얘기는 언제 해도 흥미롭기 때문에, 일단 이번 포스트에선 오리의 생식기에 집중하고, 조만간 전반적인 새의 생식기에 관한 포스트를 따로 작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상에선 머스코비오리의 팔루스가 발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머스코비오리의 팔루스는 청둥오리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청둥오리의 팔루스 역시 반시계방향의 나선형으로 꼬여 있으며, 위 영상과 같이 빠르게 발기하지요. 청둥오리의 팔루스는 혈액으로 발기하는 포유류의 음경과 달리 림프로 발기하기 때문에 1/2초 안에 빠르게 발기할 수 있고, 발기한 후에도 단단하지 않고 유연하다고 합니다. 이 팔루스는 번식기가 지나면서 떨어지고, 다음 번식기가 되면 다시 자라나는데요. 다른 경쟁자가 많을수록 팔루스는 더 길게 자라난다고 합니다.


발사되다시피 빠르게 발기하고, 20cm에 이를 정도로 긴 팔루스는 분명 수컷이 암컷을 강간하여 후손을 남기는데 굉장히 적합해 보입니다. 그런데 후손을 남기기 위해 암컷 청둥오리가 한배에 낳는 알의 무게는 자기 몸의 반 이상입니다. 즉, 알을 낳는 것은 암컷 청둥오리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지요. 그래서 암컷에게 있어 자신이 선택한 수컷의 알을 낳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떼로 덤비는 수컷과 원치 않는 교미를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죠. 그래서 청둥오리의 암컷은 수컷의 팔루스에 대응하여 불필요한 정자가 수정되는 것을 막도록 진화하였습니다.


청둥오리와 유사한 북경오리의 생식기와, 수컷의 팔루스 실험에 사용된 유리관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Brennan et al. (2010).
청둥오리와 유사한 북경오리의 생식기와, 수컷의 팔루스 실험에 사용된 유리관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Brennan et al. (2010).

위 사진의 (a)에서 왼쪽부터 각각 암수 북경오리의 성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암컷의 생식기는 시계방향으로 꼬여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컷의 팔루스와 반대로 꼬여있는 암컷의 생식기는 수컷의 팔루스가 완전히 발기하는 것을 막습니다. 그뿐 아니라 암컷의 생식기 내엔 끝이 막힌 가짜 길이 존재합니다. 암컷은 이곳에 불필요한 정자를 담아두었다 버립니다. (b)에선 다양한 모양의 유리관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중 오른쪽의 두 유리관이 암컷의 생식기와 유사한 구조로, 이와 같이 시계방향으로 꼬이거나 급격히 꺾인 유리관에서는 수컷의 팔루스가 완전히 발기하지 못합니다.


청둥오리의 수컷 생식기에 관한 연구는 꽤 많이 이루어져 있었지만, 암컷 생식기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굉장히 최근의 일입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밝혀진 방어기제 외에도, 암컷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불필요한 정자와의 수정을 방지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청둥오리 수컷의 강간으로 수정이 이루어질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물론 암컷에게 선택받은 수컷은 무사히 발기하여 성공적으로 교미를 마칠 수 있습니다.


생식기 사진을 잔뜩 보셨으니 잠시 귀여운 새끼오리를 보며 힐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USFWS Mountain-Prairie on Flickr
생식기 사진을 잔뜩 보셨으니 잠시 귀여운 새끼오리를 보며 힐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USFWS Mountain-Prairie on Flickr

수컷들의 강간 습성은 수컷 간의 경쟁이 더 극심해지게 하는 결과도 낳았습니다. 암컷이 강간에 대응하여 불필요한 정자가 수정되는 것을 막도록 진화하자, 수컷들의 번식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더는 강간만으로 자손을 남길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짝을 얻기 위한 수컷들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그 결과 이전보다 더욱 우수한 수컷들만이 암컷과 교미하고 자손을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수컷들의 팔루스가 커질수록 암컷의 생식기도 복잡해졌고, 결국은 제일 큰 팔루스를 가진 수컷만이 교미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자신의 생식기가 20cm라도 평균보다 작다면 번식에서 도태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암컷 청둥오리의 삶이 굉장히 고달프게 보이긴 하지만, 결국 이 번식전쟁에서 승리하여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암컷입니다.


그래도 수컷 청둥오리가 참 예쁘긴 합니다. / scott spaeth on Flickr
그래도 수컷 청둥오리가 참 예쁘긴 합니다. / scott spaeth on Flickr

개인적으로 동물의 생태를 인간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수컷 청둥오리에 관해 알아보면 일부 인간 군상이 생각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수컷 새들은 자신을 잘 가꾸어 암컷에게 선택받길 기다리는 입장이라, 강간이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도 수컷 청둥오리가 예쁜 얼굴과 긴 생식기를 가진 생명체라는 것은 조류로서 유니크하면서도 매력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번식에서 탈락 예정인 수컷 청둥오리들이 자신을 가꿔 번식에 성공하거나, 아예 번식을 포기하여 더 이상 암컷들을 공격하지 않길 바라며 이번 글 마칩니다.



참고문헌

Brennan, Patricia LR, Christopher J. Clark, and Richard O. Prum. "Explosive eversion and functional morphology of the duck penis supports sexual conflict in waterfowl genitalia."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B: Biological Sciences 277.1686 (2010): 1309-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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