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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기러기

Greater white-fronted goose, 작지만 큰 기러기

오늘은 24절기 중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입니다. 단풍이 짙어지고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되는 한로에는 여름새가 떠나고 겨울새가 돌아온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겨울 철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러기가 아닐까 합니다. 기러기는 단일 종이 아니라 쇠기러기나 캐나다기러기, 회색기러기 등 기러기류의 새들을 총칭하는 용어인데요. 오늘은 이 기러기들 중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기러기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멋진 자세로 배의 무늬를 보여주고 있는 쇠기러기입니다. / ⓒ Ari Boehm

오늘 소개할 것은 쇠기러기로,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기러기입니다. 여름에는 툰드라에서 번식하고 온대 지역에서 겨울을 나는 쇠기러기는 10월~3월 사이에 한국에 머무르는데요. 전체적으로 갈색이 도는 회색 깃털은 몸 앞으로 갈수록 옅어지며, 배에 불규칙적인 검은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쇠기러기는 몸길이 65~80cm의 꽤 큰 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기러기 중에선 작은 편에 속합니다. 이름에 작음을 뜻하는 쇠가 들어가는 것을 통해 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왼쪽은 흰 이마를 과시하고 있는 쇠기러기, 오른쪽은 쇠기러기보다 작은 흰이마기러기입니다. / Aaron Maizlish on Flickr, BS Thurner Hof on Wikimedia commons왼쪽은 흰 이마를 과시하고 있는 쇠기러기, 오른쪽은 쇠기러기보다 작은 흰이마기러기입니다. / Aaron Maizlish on Flickr, BS Thurner Hof on Wikimedia commons

한국에선 작은 기러기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리는 쇠기러기는 북미에선 greater white-fronted goose라고 불리는데요. 그렇다면 분명 북미에는 lesser white-fronted goose라는 이름의 새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쇠기러기와 닮았지만 더 작은 종인 이 새의 한국 이름은 흰이마기러기로, 한국에는 길 잃은 새(迷鳥)로 아주 가끔 찾아오곤 하죠. 쇠기러기의 영명을 직역하면 커다랗고, 이마가 하얀 기러기가 되는데요. 이는 부리 위의 이마에 하얀 깃이 자라있기 때문이며, 학명인 Anser albifrons에서 albifrons 역시 라틴어로 희다는 뜻의 albus와 이마를 뜻하는 frōns가 합쳐져 흰 이마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자세히 보면 쇠기러기 사이에 검은 목과 흰 뺨을 가진 캐나다기러기(Canada goose)가 섞여 있습니다. / CheepShot on Flickr

기러기는 계절에 맞춰 오고 가는 습성 때문에 가을을 알리는 새로 여겨졌으며, 먼 거리를 오고 간다고 서신을 나르는 새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이주하는 기러기들은 무리를 지어 V자 모양의 대열을 지어 날아가는데요. 줄을 맞춰 날아가는 모습이 다정한 형제 같다고 하여, 의좋은 형제를 기러기의 행렬에 빗대어 안항(雁行)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대열을 맞춰 날아가는 것은 기러기들이 의좋아 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공기 저항을 줄여주어 비행을 더 수월하게 해줍니다. V자 대형의 꼭짓점에 위치하는 선두 자리는 공기 저항을 가장 많이 받아 금방 지치기 때문에, 기러기들은 선두를 계속 교대해가며 날아간다고 하네요.


귀여운 목안(木雁)들의 쌍쌍이 다양한 형태들입니다. / 국립민속박물관,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0100106660200000, 덕포진교육박물관,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420600100088300000귀여운 목안(木雁)들의 쌍쌍이 다양한 형태들입니다. / 국립민속박물관,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0100106660200000, 덕포진교육박물관,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420600100088300000
오른쪽 아래의 가장 화려한 쌍은 나무가 아닌 종이로 만들어진 종이기러기(紙雁)이라고 하네요. / 국립민속박물관,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0100108318700000,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300400200055600000오른쪽 아래의 가장 화려한 쌍은 나무가 아닌 종이로 만들어진 종이기러기(紙雁)이라고 하네요. / 국립민속박물관,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0100108318700000,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300400200055600000

기러기는 전통 혼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새이기도 합니다. 신랑이 혼례를 위해 신부집으로 가서 기러기를 전하는 절차를 전안례(奠雁禮)라고 하는데요. 옛날에는 전안례에 진짜 기러기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며 점차 목기러기를 사용하도록 바뀌었다고 하죠. 혼례에 기러기를 사용한 것은 기러기의 암수가 다정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쇠기러기는 한 상대와 짝을 짓고 1년 내내 함께 지내는 새로, 갓 혼례를 올리는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기에 적절한 새죠. 또한 쇠기러기는 어린 새끼들이 충분히 자란 이후에도 부모를 떠나지 않고 1년 이상 함께 지내는 새로, 부부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화목을 기원하기에도 아주 적절한 새들이겠습니다.


부리 위의 흰 부분과 배의 검은 무늬로 보아 쇠기러기로 추정됩니다. / <노안도(蘆鴈圖)>, 안중식, 1909년, 국립중앙박물관부리 위의 흰 부분과 배의 검은 무늬로 보아 쇠기러기로 추정됩니다. / <노안도(蘆鴈圖)>, 안중식, 1909년, 국립중앙박물관

옛 사람들은 기러기를 그릴 때 꼭 갈대를 함께 그리곤 했는데요. 갈대와 기러기를 뜻하는 노안(蘆雁)과 노안(老安)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안락한 노후에 대한 기원을 담아 갈대와 기러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쇠기러기는 물새이기 때문에, 그림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갈대와 함께 있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그러니 혹시나 갈대밭을 지나다가 기러기를 본다면 마음 속으로 자신과 기러기의 노후의 안녕을 빌어보도록 합시다.


당신에게 찾아온 쇠기러기입니다. / Francesco Veronesi on Flickr

오늘은 가을이 되면 찾아오는 새 쇠기러기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기러기는 토마토와 더불어 영원히 계속되는 끝말잇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일 텐데요. 이번 겨울엔 말로만 듣던 기러기를 직접 보러 떠나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어 위키백과의 쇠기러기 페이지에 실려있던, 옛날 트위터 기본 프로필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쇠기러기 알 사진 첨부하며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 Roger Culos on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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