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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숲칠면조

Australian brushturkey, 무덤에서 요람까지

보일러로 따뜻하게 데워진 바닥과 아늑한 이불 사이에 들어가 배를 지지면서 귤을 까먹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바닥에 눌어붙어 노곤하게 내가 귤의 꿈을 꾸는지 귤이 나의 꿈을 꾸는지 생각하며 꼬닥꼬닥 졸다 깨어나 보면 손발이 샛노래져 있는 그런 계절입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이불에 파묻혀서 따뜻하게 몸을 지지면서 보면 좋을 포스트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검은 몸과 노란 볏이 멋진 대비를 이룹니다. / roger smith on Flickr
검은 몸과 노란 볏이 멋진 대비를 이룹니다. / roger smith on Flickr

오늘 얘기할 새의 이름은 호주숲칠면조입니다. 이름처럼 호주에 살긴 하는데, 칠면조와는 생김새가 닮았을 뿐 계통적으론 딱히 관련이 없는 새이죠. 몸길이가 70cm 정도인 호주숲칠면조는 그 거대한 크기뿐만 아니라 붉은 머리와 노란 볏이 굉장히 눈에 띄는 새인데요. 일부 아종의 경우 목의 볏이 노란색이 아닌 보라색을 띠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주숲칠면조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머리와 볏의 색이 더 밝고 선명해지며 볏의 크기가 커지는데요. 다행히도 커지는 것은 볏 뿐으로, 머리가 커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호주숲칠면조는 무덤새과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과에 속하는 새입니다. 그렇다면 이 과에 속한 새들은 다른 생명들을 무덤으로 보내버리는 죽음의 새인 것일까요. 다행히도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와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은 무덤새과의 새들이 흙과 나뭇잎 등을 사용하여 무덤같이 생긴 둥지를 짓기 때문입니다. 무덤새과의 알들은 부모에게 품어지는 대신 나뭇잎 등이 썩으며 생기는 부패열로 따끈따끈하게 데워지죠.


커다란 호주숲칠면조가 작아보일 정도로 거대한 둥지입니다. / Merryack on Flickr
커다란 호주숲칠면조가 작아보일 정도로 거대한 둥지입니다. / Merryack on Flickr

호주숲칠면조의 수컷은 한 달이 꼬박 걸려 거대한 둥지를 짓는다고 하는데요. 높이는 1m, 지름은 4m가 넘는 거대한 둥지는 무덤보다도 고분이라 부르는 쪽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암컷이 알을 낳은 뒤에 둥지를 관리하는 것도 수컷의 몫인데요. 천적을 쫓아 둥지를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둥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호주숲칠면조의 둥지엔 보일러가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온도를 체크하고 조절해주어야 하는데요. 수컷은 부리를 둥지에 꽂아 온도를 확인하고, 알들에게 쾌적하도록 33~35℃ 사이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아직 어린 새의 날개에서도 잘 발달한 깃털을 볼 수 있습니다. / Pursuedbybear on Flickr
아직 어린 새의 날개에서도 잘 발달한 깃털을 볼 수 있습니다. / Pursuedbybear on Flickr

둥지가 독특한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호주숲칠면조의 부화 과정은 더욱 신기한데요. 새끼 새들은 솜털은 커녕 눈도 못 뜬 채로 태어나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보다 조금 더 자라서 나온다면 태어날 때부터 솜털이 자라있으며 부화한 지 몇 시간이 지나면 걸을 수도 있죠. 하지만 호주숲칠면조는 이보다도 한층 더 조숙하게 깃털이 자란 채로 부화합니다. 심지어 부화 후 몇 시간이 지나 깃털이 마르면 날 수도 있을 정도이죠. 이와 같이 알 속에서 충분히 성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호주숲칠면조의 알은 가장 긴 방향의 길이가 9cm에 이르며 노른자의 비율도 50%가 넘을 정도로 높다고 합니다.


다른 새들은 알에서 나오는 것만으로 부화가 전부 끝나겠지만, 호주숲칠면조의 새끼들은 알껍데기를 깬 후에도 헤치고 나와야 할 흙더미가 한 겹 더 있습니다. 하지만 부화한 날에 날 수도 있을 정도로 대단한 아가가 무덤 탈출이라고 못할 것은 없겠지요. 무덤새과에 속한 새들을 영어로 megapode라 하는데, 이는 큰 발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μέγα πόδα가 유래입니다. 어린 호주숲칠면조는 크고 강한 발을 사용하여 알을 부수고, 흙을 파고 나와서 독립된 삶을 시작하죠.


보라색 볏은 이런 느낌인가 봅니다. / Tony Morris on Flickr
보라색 볏은 이런 느낌인가 봅니다. / Tony Morris on Flickr

오늘은 따뜻한 무덤에서 태어나는 새 호주숲칠면조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충분히 성장해서 태어나는 것은 정말 대단하고 부러운 일이지만, 그 후로 그만큼 더 혼자 헤쳐 나아가야 할 일이 많을 것을 생각하면 참 고생이 많겠습니다. 일단은 부화 중인 호주숲칠면조의 기분을 느끼기 위해 이불 속에 들어가 귤을 먹어보아야겠으니, 이번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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