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조만간 롱패딩으로도 버틸 수 없는 맹렬한 추위가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고 출근이고 전부 때려치우고 이불 속에서 몸을 지지면서 손이 노랗게 될 때까지 귤이나 까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일상을 영위해가야 하겠지요. 불이라도 두르고 다닐 수 있다면 좀 따뜻할지도 모르겠지만, 건조한 기후로 작은 불씨에도 쉽게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요즘 같은 때에 불을 다루는 것은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다소나마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핫합니다.
핫합니다.

오늘 소개할 것은 위와 같이 활활 불타는 새의 짤입니다. 저의 마음이 추위로 얼어붙어서 잔혹하고 끔찍한 짤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어 고통을 주려고 마음먹은 것이냐면 그것은 아닙니다. 머리에 불이 붙은 새가 괴로워하는 끔찍한 사진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이 사진에서 새는 모닥불 앞을 뛰어가고 있으며, 절묘한 타이밍 덕에 불을 지배하는 자처럼 사진이 찍혔을 뿐이죠. 물론 이 새가 진짜로 불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으며, 마침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인간에게 자신의 대단함을 보여주기 위해 이와 같은 구도를 의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진의 원출처는 여기인데, 이 새가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는 원작자의 코멘트를 볼 때 이 가설은 더욱 힘을 얻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있는 회색기러기들입니다. / Martin Pettitt on Flickr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있는 회색기러기들입니다. / Martin Pettitt on Flickr

이 짤은 fire duck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짤에 찍힌 새는 오리가 아닙니다. 머리의 화려한 불길에 현혹되어 정작 이 새 자체를 자세히 보긴 어렵겠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잘 살펴보면 이 새의 생김새는 회색기러기(greylag goose)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색기러기는 몸길이가 70~90cm에 이르는 거대한 새로, 날개를 펴면 그 너비가 180cm에까지 이르기도 한다고 하니 이렇게 풍채 좋은 새가 불을 달고 달려든다면 정말 무섭겠습니다.


인간과 함께하는 삶의 효용에 대해 생각하며 공원을 거닐고 있습니다. / HombreDHojalata on Wikimedia commons
인간과 함께하는 삶의 효용에 대해 생각하며 공원을 거닐고 있습니다. / HombreDHojalata on Wikimedia commons

회색기러기의 학명은 Anser anser인데, anser는 거위를 의미하니 학명으로만 보면 회색기러기는 정말 거위 중의 거위인데요. 아마도 이것은 서양 사람들에게 거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회색기러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중국 거위는 개리(swan goose)를 가금화한 것이며, 유럽 거위는 바로 이 회색기러기를 가금화한 것이죠. 회색기러기는 이집트에서 최소 3000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한, 최초의 가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사실 오늘의 사진에 찍힌 것도 야생의 회색기러기가 아닌 가금화된 거위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아종이니 관대하게 이해하고 넘어가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보송보송하고 데글데글한 작은 풍요들입니다. / Frytaarn on Wikimedia commons
보송보송하고 데글데글한 작은 풍요들입니다. / Frytaarn on Wikimedia commons

가금화되어 사람 가까이 살던 새인 만큼, 회색기러기는 많은 것을 상징하는데요. 바빌로니아에서 회색기러기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Ishtar)의 전신인 치유와 풍요의 여신 굴라(Gula)의 새였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선 이슈타르에 대응되는 신인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Ἀφροδίτη)를 상징하였죠. 회색기러기의 지방은 성욕촉진제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성욕촉진제의 영어 표현인 aphrodisiac이 '아프로디테에 속하는'이란 뜻의 Ἀφροδίσιος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유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회색기러기는 태양신 라(⊙)를 상징하였죠.


가장 우측에 보이는 것이 불꽃을 다루는 회색기러기의 불꼬츄ㅠㅠㅠㅠ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Herrera, Ana M., et al. (2013).
가장 우측에 보이는 것이 불꽃을 다루는 회색기러기의 불꼬츄ㅠㅠㅠㅠ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Herrera, Ana M., et al. (2013).

사랑, 풍요, 태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전부 고대에는 남근과 연관되는 개념이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새와 달리 일부 오리과의 새는 긴 외부생식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회색기러기가 바로 이 긴 외부생식기를 가지고 있는 일부 오리과 새 중 하나입니다. 고대인들이 말은 안 했지만 분명 회색기러기의 생식기를 보고 이와 같은 상징을 붙여주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회색기러기의 머리에서 활활 불타는 정염의 불꽃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오늘은 머리에 열이 많은 어느 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어쩌면 사타구니에도 열이 많은 새일지도 모릅니다. 머리에 불을 얹은 또 다른 새에 관한 포스트 하나 소개하며, 이번 포스트 여기서 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Herrera, Ana M., et al. "Developmental basis of phallus reduction during bird evolution." Current Biology 23.12 (2013): 1065-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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