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사리분별이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병리학적인 증상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마음의 문제가 원인일 때도 많죠. 그런 뜻에서 오늘은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짤을 하나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종의 토끼 vs 뒤집힌 오리?
새로운 종의 토끼 vs 뒤집힌 오리?

오늘 소개할 것은 이 밈입니다. 이 사진에 찍힌 동물은 분명 토끼 아니면 오리일 텐데, 아직까지는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군요. 이 밈의 원본사진이 실린 것은 여기로 추정되는데, 그 날짜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1년 8월입니다. 워낙 오래전이기 때문인지 사진이 올라온 흔적만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정작 원본 사진은 볼 수 없는데요. 이 페이지에서는 더 이상의 힌트를 얻을 수 없으니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오늘의 짤이 어떤 종인지 확실히 알아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이 짤이 명확히 토끼라고 밝혀질 경우, 이 포스트를 폐기하거나 블로그 이름을 토와 끼 같은 것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함께 실린 문구는 '세상에서 제일 서로 닮은 동물은? 토끼와 오리.'라고 하는군요.
함께 실린 문구는 '세상에서 제일 서로 닮은 동물은? 토끼와 오리.'라고 하는군요.

토끼라 생각하면 토끼로 보이고, 오리라 생각하면 오리로 보이는 그림을 다들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이 그림은 1892년 10월 23일 발매된 'Fliegende Blätter'라는 독일 잡지에 처음 실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900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조셉 자스트로우(Joseph Jastrow)는 자신의 저서 'Fact and Fable in Psychology'에서 지각은 외부 자극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 활동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이 이미지를 사용했는데요. 간단히 말해보자면 이 이미지를 토끼로도 오리로도 보기 위해선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이 버전이 제일 귀여워서 마음에 듭니다.
개인적으론 이 버전이 제일 귀여워서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1953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도 자신의 저서인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에 이 토끼-오리 이미지를 사용하였는데요. 비트겐슈타인은 이 그림을 자스트로우의 저서에서 가져왔다고 했는데, 이 두 그림이 같은 그림일 리가 없으니 아무래도 속아서 잘못 빌려온 것 같습니다. 각종 저명한 학자들이 이 그림을 토끼-오리 이미지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사실 이 세상의 모든 토끼와 오리는 서로 중첩된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어쨌거나 저 친구는 최소한 반은 오리일 테니 이 포스트는 무사히 작성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블로그가 포유와 부리가 아닌 이상 조류 비율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것이 좋을 테니, 이 동물이 오리에 가깝다는 정보를 조금만 더 찾아보도록 하죠.


鴨 次 元 門 開 放
鴨 次 元 門 開 放

조사를 위해 또 다른 사진을 보도록 합시다. 이 사진은 오늘의 밈을 90˚ 회전시켜 만들어진 또 다른 밈인데요. 이 사진에 대해서는 토끼와 관련된 의견은 없고, 이세계의 포탈을 통해 이 세계로 건너오고 있는 오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죠. 두 개의 밈을 보았는데 오리라는 의견이 두 표, 토끼라는 의견이 한 표 나왔으니 이 동물이 오리라는 강한 믿음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뺨이 희고 눈이 금빛인 토끼오리의 수컷입니다. / Andrew Reding on Flickr
뺨이 희고 눈이 금빛인 토끼오리의 수컷입니다. / Andrew Reding on Flickr

이 동물이 오리가 맞다면 분명 흰뺨오리일 것입니다. 이 친구의 뺨을 보면 왜 흰뺨오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를 유추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죠. 흰뺨오리의 영명은 common goldeneye인데, 이 친구의 눈을 보면 왜 금빛 눈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를 유추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흰뺨오리의 암컷은 뺨이 희지 않고 머리도 갈색이기 때문에 오늘 짤의 토끼오리는 수컷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그럼 도대체 저 수컷 흰뺨오리는 왜 저러는 것일까요. 토끼가 되고 싶어서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스트레칭을 하고 싶었던 것뿐일까요. 놀랍게도 수컷 흰뺨오리의 저 행위의 목적은 구애이며, 암컷은 커다란 머리의 수컷의 기행에 매력을 느끼나 봅니다. 물론 수컷이 토끼를 유혹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걸 본 토끼가 어떤 생각을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묘한 움직임으로도 구애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데글데글 모여있는 아가오리가 귀엽기 때문은 아닐까요. / Bengt Nyman on Flickr
기묘한 움직임으로도 구애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데글데글 모여있는 아가오리가 귀엽기 때문은 아닐까요. / Bengt Nyman on Flickr

구애를 받을 때는 저 큰 머리와 기묘한 움직임에 현혹되었지만, 정작 알을 낳을 때가 되니 회의감이 드는 것인지 흰뺨오리 암컷은 다른 암컷의 둥지에 탁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종끼리는 물론이고, 북방흰뺨오리(Barrow's goldeneye)와는 서로서로 탁란하는 사이이죠. 반대로 아메리카원앙(wood duck)이나 관머리비오리(hooded merganser)와 같은 새들은 흰뺨오리 둥지에 탁란을 하는데, 이쯤 되면 그냥 암컷끼리 모여서 공동 육아를 하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오리류에서 수컷이 육아에 참여하는 것은 꽤나 드문 일이니 말이죠.


왼쪽부터 북방흰뺨오리, 아메리카원앙, 관머리비오리의 수컷입니다. / Tom Koerner/U.S. Fish & Wildlife Service, Nick Chill, Mick Thompson on Flickr왼쪽부터 북방흰뺨오리, 아메리카원앙, 관머리비오리의 수컷입니다. / Tom Koerner/U.S. Fish & Wildlife Service, Nick Chill, Mick Thompson on Flickr왼쪽부터 북방흰뺨오리, 아메리카원앙, 관머리비오리의 수컷입니다. / Tom Koerner/U.S. Fish & Wildlife Service, Nick Chill, Mick Thompson on Flickr
왼쪽부터 북방흰뺨오리, 아메리카원앙, 관머리비오리의 수컷입니다. / Tom Koerner/U.S. Fish & Wildlife Service, Nick Chill, Mick Thompson on Flickr

이 와중에 다행인 것이, 위 문단에서 언급된 새들은 전부 머리가 큰 새들입니다. 그러니 서로 탁란을 하더라도, 태어난 새끼가 자기랑 다른 종인 것 때문에 놀랄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큰 것 때문에 놀랄 일은 없겠죠. 또한 이와 같이 머리가 커다란 것은 장식깃이 잘 부풀었기 때문이며, 두개골 자체가 거대하게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물토끼와 산토끼입니다. / http://ibigdan.livejournal.com/9106286.html, SIN JONES on Flickr물토끼와 산토끼입니다. / http://ibigdan.livejournal.com/9106286.html, SIN JONES on Flickr
물토끼와 산토끼입니다. / http://ibigdan.livejournal.com/9106286.html, SIN JONES on Flickr

오늘은 귀엽고 머리가 큰 흰뺨토끼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내 토끼 얘기를 했으면서도, 막상 토끼 사진을 한 장도 안 올리는 것은 좀 아쉽군요. 그런 뜻에서 오늘의 짤의 원본과 토끼 사진 한 장 첨부하며 오늘의 포스트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그린 걸까요...?
직접 그린 걸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이미지는 비트겐슈타인의 토끼오리와 같은 페이지에 실려있던 이미지인데 혼자 보기 아까워서 첨부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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