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름에 콧수염이 들어가는 새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새들은 대개 부리 위에 콧수염을 닮은 무늬를 가지고 있죠. 이와 같은 콧수염 무늬는 사적인 자리에서는 콧수염으로 통용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엄밀한 기준으로는 콧수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듯합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비록 이름엔 콧수염이 들어가지 않지만, 어떤 기준으로 따져보아도 웬만해선 부정할 수 없는 훌륭한 콧수염을 가진 새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잉카 제국이 그리운 듯한 잉카제비갈매기입니다. / Rob Albright on Flickr
잉카 제국이 그리운 듯한 잉카제비갈매기입니다. / Rob Albright on Flickr

오늘 소개할 새는 잉카제비갈매기입니다. 부리 옆에 자란 콧수염 모양의 긴 털이 인상적인 것으로 유명한 새이죠. 잉카제비갈매기라는 이름은 이 새들의 서식지가 옛 잉카 제국과 겹치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잉카 사람들이 딱히 저런 콧수염을 기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날개와 부리에서는 15~16세기 잉카 제국에서의 삶을 체험해보신 분들의 연락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멋짐을 잘 알고 있는 잉카제비갈매기입니다. / Raponchi on Flickr
자신의 멋짐을 잘 알고 있는 잉카제비갈매기입니다. / Raponchi on Flickr

잉카제비갈매기의 외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분명 길게 자란 콧수염입니다만, 설령 면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잉카제비갈매기는 여전히 화려하고 인상적인 새일 것입니다. 뾰족한 부리와 발은 강렬한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콧수염 밑의 볏은 부리에 지지 않을 정도로 쨍한 노란색이죠. 수염과 맞춘 듯한 날개 끝의 흰 선은, 날 때는 물론 날개를 접고 있을 때도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선명한 인상을 남깁니다.


어린 잉카제비갈매기의 하찮고 귀여운 수염이 살짝 보입니다. / Rolf Dietrich Brecher on Flickr
어린 잉카제비갈매기의 하찮고 귀여운 수염이 살짝 보입니다. / Rolf Dietrich Brecher on Flickr

한 번이라도 잉카제비갈매기를 본 사람은 더 이상 콧수염과 잉카제비갈매기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콧수염은 잉카제비갈매기의 자아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잉카제비갈매기라고 태어날 때부터 콧수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잉카제비갈매기는 다른 새끼 제비갈매기와 비슷한데요. 성조와 비교해보면 아직 깃털은 갈색이고, 부리와 발은 검은색입니다. 콧수염은 아직 수염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민망할 정도로 짧고 하찮으며 노란 볏도 보이지 않죠.


포식하겠군요. / Michael Pereckas on Flickr
포식하겠군요. / Michael Pereckas on Flickr

새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잉카제비갈매기가 아무리 멋진 콧수염을 가지고 있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제비갈매기입니다. 따라서 이 새들의 식생활 역시 다른 제비갈매기와 크게 다르지 않죠. 잉카제비갈매기는 앤초비와 같이 작은 물고기가 주식으로, 먹이를 발견한 잉카제비갈매기는 물속으로 다이빙하여 뾰족한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채는데요. 이때 멋진 콧수염은 딱히 도움도 방해도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잉카제비갈매기에게 수염과 볏 길이를 측정해달란 부탁을 받으면 참고하도록 합시다. / Figure adapted from Velando, A. et al. (2001).
잉카제비갈매기에게 수염과 볏 길이를 측정해달란 부탁을 받으면 참고하도록 합시다. / Figure adapted from Velando, A. et al. (2001).

잉카제비갈매기의 수염은 분명 멋지긴 합니다만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는 딱히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패션을 위해 기른 콧수염일 리는 없겠죠. 그럼 이 새들은 왜 이 길고 하얀 얼굴 털을 가지고 있을까요. 수염의 쓸모를 알아보기 위해선 이 수염 자체에 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장식깃이 있는 것은 수컷뿐인데요. 잉카제비갈매기들은 암컷도 수염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잉카제비갈매기의 몸 크기와 수염 길이는 암수 간에 차이가 없죠.


굉장히 건강해보이는 부모와 굉장히 빵빵하고 만족스러워보이는 새끼입니다. / Cristóbal Alvarado Minic on Flickr
굉장히 건강해보이는 부모와 굉장히 빵빵하고 만족스러워보이는 새끼입니다. / Cristóbal Alvarado Minic on Flickr

잉카제비갈매기의 수염 길이는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수염이 길수록 건강한 잉카제비갈매기라는 것이죠. 그리고 잉카제비갈매기는 한 상대와 짝을 이루는 새로, 암수가 함께 새끼를 키웁니다. 건강한 배우자를 고르고 싶은 잉카제비갈매기는 암수를 불문하고 긴 수염의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겠죠. 실제로 번식에 성공한 잉카제비갈매기의 수염 길이는 번식에 실패한 새들에 비해 확연히 길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의 수염이 길수록, 새끼는 무겁고 면역력이 뛰어난 건강한 빵빵이가 되죠.


그윽하군요. / Kitty Terwolbeck on Flickr
그윽하군요. / Kitty Terwolbeck on Flickr

오늘은 콧수염 같은 멋진 장식깃과 프리지아 꽃잎 같은 앙증맞은 볏, 그리고 말린 고추같이 새빨간 부리를 가진 새 잉카제비갈매기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무언가 수염과 관련된 멋진 경험담을 얘기하며 근사하게 퇴장하고 싶었습니다만, 생각해보니 제 인생에 수염이 존재했던 시기가 아직까진 없었기 때문에 이번 포스트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Velando, A., C. M. Lessells, and J. C. Márquez. "The function of female and male ornaments in the Inca Tern: evidence for links between ornament expression and both adult condition and reproductive performance." Journal of Avian Biology 32.4 (2001): 3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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