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폴더

솜바지 벌새

보송따끈

추분이 어느새 지나가나 싶더니만 추석과 개천절도 순식간에 지나가며 찬이슬이 내리는 한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낮에는 아직 더울 때도 있지만 밤에는 제법 서늘한 것이, 일교차가 심해져서 앓기에 딱 좋은 계절이기도 하죠. 슬슬 반팔과 반바지는 옷장에 넣을 준비를 하고, 따끈따끈한 솜바지를 꺼낼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보송보송한 솜바지를 입은 작은 새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푸른배솜발벌새(sapphire-vented puffleg)의 뽀얗고 보송한 솜발 사진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 Julien Renoult (CC BY-NC)

오늘 소개할 것은 다리가 보송보송한 벌새들입니다. 벌새과에는 300종 이상의 새가 속해 있으며, 그중에서 Eriocnemis속과 Haplophaedia속, Ocreatus속으로 분류되는 벌새들이 솜바지를 입고 있는데요.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각각의 새에 관해 자세히 얘기하기보다는, 각 속에 속한 벌새들의 공통적인 특성에 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세 속의 벌새들은 전부 남미에 서식하며, 그중에서도 안데스 산맥의 해발 고도가 1000m 이상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새인데요. 이 보송이들은 몇몇 종을 빼고는 전부 새하얀 솜바지를 입고 있으며, 흰색 외에 다른 색의 솜바지를 입고 있는 벌새들에 관해서는 우선 각 속에 관해 소개한 후 따로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빛남과 솜발을 보여주고 있는 빛솜발벌새(glowing puffleg)입니다. / © David McCorquodale (CC BY-NC)

제일 먼저 소개할 것은 Eriocnemis속의 '솜발벌새(puffleg)'입니다. 이 새들의 속명인 Eriocnemis는 고대 그리스어로 양털을 뜻하는 ἔριον과 갑옷의 정강이 받이(또는 각반)를 뜻하는 κνημίς가 합쳐진 것인데요. 현대에는 이런 형태의 갑옷을 입을 일이 잘 없을 테니, 대강 부츠를 신었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보송보송한 털을 정강이에 둘렀다는 것이니, 이 새들의 작고 사랑스러운 솜다리들을 잘 나타내주는 속명이라고 볼 수 있죠. 솜발벌새들의 수컷은 대부분 녹색이나 파랑, 또는 구릿빛 광택이 도는 깃털을 가지고 있으며, 암컷은 그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 색을 띠는데요. 하지만 보송보송한 솜발은 암수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흰 바지를 배까지 끌어 올려 입은 것 같은 초록털발벌새(greenish puffleg)입니다. / © David Monroy R (CC BY-NC)

두 번째로 소개할 것은 Haplophaedia속의 '털발벌새(puffleg)'입니다.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솜발벌새와 털발벌새 뒤의 괄호에는 똑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요. 솜발벌새들과 털발벌새들의 영명은 전부 puffleg로 통일되어 있습니다만, 한국어 이름은 속에 따라 솜발과 털발로 구분이 되어 있죠.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어떤 이름도 벌새들의 보송보송함을 잘 나타내기 위해 보송보송함을 잔뜩 넣어 지은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털발벌새들의 속명인 Haplophaedia는 고대 그리스어로 소박함을 뜻하는 ἁπλόος와 빛남을 뜻하는 φαιδρός가 합쳐진 것인데요. 광택이 번쩍번쩍한 다른 수컷 벌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색 때문에 이런 학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박한 빛이라니, 다소 역설적인 느낌을 주는 속명이지요.


하얀털발라켓꼬리벌새(white-booted racket-tail)가 멋진 자세로 털발과 라켓 꼬리를 뽐내고 있습니다. / Doug Greenberg on Flickr

세 번째로 소개할 것은 Ocreatus속의 '라켓꼬리벌새(booted racket-tail)'입니다. 라켓꼬리벌새의 속명인 Ocreatus는 라틴어로 정강이 받이를 착용했음을 의미하는 ocreatus가 그 유래이죠. 라켓꼬리벌새들은 오늘 소개할 뽀송다리들 중에서도 가장 북실북실한 솜바지를 입고 있는데요. 그것만으론 화려함이 부족했는지, 이 새의 수컷은 아주 길고 끝이 동그란 꽁지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새에게 라켓이 들어가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와 같은 꽁지깃 때문이지요. Ocreatus속에 속한 벌새들은 꽤 오랫동안 한 종이라 여겨졌다가, 최근 들어서 세 종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지금도 라켓꼬리벌새들은 전부 한 종으로 묶이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흰 바지만큼 눈에 띄진 않지만, 못지않게 복슬복슬한 검은 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옆으로 넘기시면 다른 색 솜바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 © Ken Chamberlain (CC BY-NC)담황색대퇴털발벌새는 초록털발벌새의 아종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더 선명한 담황색대퇴털발벌새를 보고 싶으시다면, 선명한 초록털발벌새 사진을 가져다 놓고 바지가 담황색인 것을 상상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 Tom & Jenny Jackman / Macaulay Library at the Cornell Lab of Ornithology (ML122855241, https://macaulaylibrary.org/asset/122855241)여기가 마지막 솜바지이니 이제 옆으로 더 넘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 © MaoMorning Yip (CC BY-NC)

지금까지 새하얀 보송바지를 입은 수많은 벌새들에 관해 얘기했으니, 이제 다른 색 바지를 입은 벌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소개해 드릴 것은 새까만 바지를 입고 있는 검정대퇴솜발벌새(black-thighed puffleg)인데요. 딱히 종 전체가 흑화했거나 헤비메탈에 심취했다는 정황은 찾을 수 없는 것을 보니, 취향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타고나기를 검은 다리 깃털을 가졌을 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새는 담황색대퇴털발벌새(buff-thighed puffleg)로, 이름처럼 담황색 바지를 입고 있는데요. 이 새의 영명을 살펴보면 담황색을 뜻하는 버쁘와 부풀부풀함을 뜻하는 뻐쁘가 둘 다 들어가서, 발음부터 부풀부풀한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유니크 솜바지 벌새는 붉은털발라켓꼬리벌새(rufous-booted racket-tail)인데요. 반짝이는 녹색 깃털과 포슬포슬한 붉은 솜털이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이 정도면 벌새가 솜바지를 입고 있다기보다는, 솜바지가 벌새를 얹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 © John G. Phillips (CC BY-NC)

오늘은 보송보송한 솜바지를 입은 새들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포스트를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밖에서는, 체감상 기둥 뿌리를 뽑아 버릴 것 같은 찬 바람이 불고 있는데요. 연휴가 끝나 마음이 싸늘해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날씨까지 같이 싸늘해지는 시기,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잘 챙기시길 바라며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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