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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갈색오르네로

rufous hornero, 노릇노릇

날이 더울 때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단순히 덥다는 느낌을 넘어 조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 또는 화덕 중 하나에 들어가 있음이 분명한 것 같은데, 그중 정확히 무엇에 갇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오븐에서 사는 새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적갈색인 적갈색오르네로입니다. 사실은 부분부분 다른 색도 있습니다. / © Diego Caballero (CC BY-NC-ND)

오늘 소개할 새는 적갈색오르네로입니다. 몸길이는 20cm 정도로, 작다고 하기엔 크지만 그렇다고 엄청 크지도 않은 새이죠. 적갈색오르네로는 암수의 겉모습이 거의 유사한 새로, 이름처럼 전반적으로 적갈색 깃털을 가지고 있으며 눈도 붉은 갈색을 띱니다. 그런데 꽁지깃은 몸에 비해 짙은 붉은색이고, 멱은 밝은 하얀색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멱 깃털이 자신의 색소를 꽁지깃에 몰아준 것 같군요. 적갈색오르네로는 남미에 널리 서식하는 새로,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국조라는 중임을 맡고 있기까지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1000페소권 화폐에서도 적갈색오르네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요.


가마새는 오늘의 주인공이 아니니 살짝만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Melissa McMasters on Flickr

적갈색오르네로의 이름에서 적갈색 부분을 알아보았으니, 이제 오르네로 부분을 알아볼 차례인데요. 오르네로(hornero)는 스페인어로 화덕(또는 가마)을 뜻하는 단어인 horno가 유래입니다. 또한 학명인Furnarius rufus에서, furnarius도 라틴어로 화덕을 뜻하는 furnus가 그 유래이지요. 이 때문에 적갈색오르네로는 'red ovenbird(붉은 화덕 새)'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포스트에서도 더 직관적인 가마새라는 이름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요. 유감스럽게도 가마새(ovenbird)라는 이름은 북미에 사는 다른 새가 이미 선점한 일반명이라, 오늘의 주인공은 부득이하게 오르네로라는 유음 가득한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멋진 화덕이 완성되었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적갈색오르네로입니다. © Leo Lagos (CC BY-NC)

그렇다면 이 새는 왜 이렇게까지 화덕이 잔뜩 들어간 후끈후끈한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요.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보자면, 우선 오르네로들은 인간에게 처음으로 화덕을 만드는 법을 알려 준 새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화덕을 사용해서 아주 끝내주는 빵을 굽는 제빵새일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대대로 참숯가마 찜질방을 운영하는 것이 가업인 새들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겠지만 이 단락의 가설들은 전부 거짓이며, 오르네로는 진흙을 사용하여 화덕과 닮은 구조물을 만들기 때문에 화덕이 들어가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번식기가 되면 한 쌍의 오르네로 부부는 진흙을 사용하여 둥지를 쌓아 올리기 시작합니다. 이 둥지는 너비가 30cm에, 벽 두께는 3cm가 넘을 정도로 정말 크고 단단한 둥지이지요. 부리가 빠른 오르네로들은 몇 주만에 둥지를 완성시키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둥지 짓기는 보통 몇 달이 걸려서야 완성되는 대형 프로젝트입니다. 두 새가 협력해서 진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인지, 오르네로들은 기본적으로 한 상대와 짝을 지으며 그 상대와의 결혼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새입니다. 한 번 짝을 지으면 평생을 함께 하는 오르네로들도 많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오랜 시간 공들여 지은 크고 단단한 둥지이니 유지 보수해 가며 다시 쓸 법도 하건만, 의외로 적갈색오르네로들이 둥지를 재사용하는 일은 드물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번 둥지를 지었던 곳은 목이 좋은 곳이긴 하니, 전에 사용했던 둥지 근처에 새 둥지를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예전에 사용하던 둥지 바로 위에 새 둥지를 짓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 해에 걸쳐 몇 단으로 쌓인 둥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르네로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둥지에는 다른 새들이 입주하기도 하는데요. 적갈색오르네로의 빈 둥지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새 중 하나로는 사프란핀치(saffron finch)가 있습니다. 위 영상의 샛노란 새가 어른 사프란핀치이며, 둥지 속에서 고개를 쏙 내미는 갈색 새는 어린 사프란핀치입니다.


둥지가 화덕같이 생겼기 때문인지, 집주인이 잘 구운 빵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 Charles J Sharp(https://www.sharpphotography.co.uk/)

오늘은 대단한 둥지를 짓는 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적갈색오르네로들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 위에 둥지를 짓는 경우도 많은데요. 혹시 진짜 화덕 위에 둥지를 지은, 과할 정도로 이름값을 한 적갈색오르네로는 없었을지 궁금합니다. 아주 단단하고 튼튼한 둥지를 짓는 새에 관해 소개하였으니,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둥지를 짓는 새에 관한 포스트 링크도 하나 남기며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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