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더위가 무르익어가며 산천의 녹음은 짙어져가는 6월입니다. 요즘 같은 여름에 실외로 나가면 만개한 꽃 옆에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데요. 화려한 나비 날개에 마음을 뺏겨 어느 날 문득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블로그 이름이 인분과 더듬이 내지는 머리가슴배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행히도 아직까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군요. 그런 뜻에서 오늘은 나비가 생각나는 어떤 새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색 배경에 녹아들고 있는 나무타기사촌입니다. / Sgbeer on Wikimedia commons
회색 배경에 녹아들고 있는 나무타기사촌입니다. / Sgbeer on Wikimedia commons

오늘 소개할 새는 나무타기사촌입니다. 스페인부터 중국까지 유라시아에 널리 서식하며, 그중에서도 해발 1,000m에서 3,000m 사이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새이죠. 몸길이가 약 16cm인 이 새는 얼핏 보기엔 꽤 수수하고 평범합니다. 전신의 깃털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무채색이고, 그렇게 특이한 장식깃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새는 굉장히 선명한 붉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 날개깃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날개를 펼칠 때 드러나며 이 새의 멋을 완성해줍니다. 


※그리고 이 밑으로는 나비와 나방 사진이 잠시 나올 예정입니다. 최대한 얼굴과 배가 나오지 않는 사진으로 골라보았습니다만 곤충 사진에 거부감이 있으신 경우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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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곤충 친구들의 이름은 순서대로 붉은공작나비(Scarlet peacock), / Ján Svetlík, Weimar Meneses on Flickr이 멋진 곤충 친구들의 이름은 순서대로 붉은공작나비(Scarlet peacock), / Ján Svetlík, Weimar Meneses on Flickr
이 멋진 곤충 친구들의 이름은 순서대로 붉은공작나비(Scarlet peacock), / Ján Svetlík, Weimar Meneses on Flickr
붉은뒷날개나방(red underwing), / nutmeg66, dfaulder on Flickr붉은뒷날개나방(red underwing), / nutmeg66, dfaulder on Flickr
붉은뒷날개나방(red underwing), / nutmeg66, dfaulder on Flickr
붉은불나방(scarlet tiger moth)입니다. / Ron Knight, Paul Gulliver on Flickr붉은불나방(scarlet tiger moth)입니다. / Ron Knight, Paul Gulliver on Flickr
붉은불나방(scarlet tiger moth)입니다. / Ron Knight, Paul Gulliver on Flickr

나무타기사촌의 붉은 날개는 그 색뿐만 아니라 생김새가 나비와 유사합니다. 그중에서도 붉은공작나비(scarlet peacock)라고도 불리는 Anartia amathea의 수컷과 나무타기사촌의 날개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데요. 그리고 날개를 좌우로 편 채 벽에 붙어 앉아있는 자세는 나방과 굉장히 닮았죠. 이 정도의 유사성이면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을 한 번쯤 의심해보아도 꽤나 합리적인 추측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습니다.


왼쪽은 갈색나무타기(brown treecreeper)로, 나무타기사촌의 정신적 사촌입니다. / Dave Curtis, Francesco Veronesi on Flickr왼쪽은 갈색나무타기(brown treecreeper)로, 나무타기사촌의 정신적 사촌입니다. / Dave Curtis, Francesco Veronesi on Flickr
왼쪽은 갈색나무타기(brown treecreeper)로, 나무타기사촌의 정신적 사촌입니다. / Dave Curtis, Francesco Veronesi on Flickr

나무타기사촌과 같이, 이름에 '사촌(四寸)'이 붙은 새들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타기사촌에겐 조금 충격적인 얘기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나무타기사촌과 나무타기는 서로 사촌관계가 아닙니다. 사촌이 붙은 이름은 생김새가 비슷한 새의 이름을 본떠 명명한 것으로 계통적으론 딱히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나무타기와 나무타기사촌의 경우도 커다란 발로 수직의 구조물을 오르내리는 것이 닮아서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물론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볼 수 있다면 사촌일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지도 모르지요.


나무타기가 나무를 타는 것과 달리 나무타기사촌은 벽을 탑니다. 이 때문에 나무타기사촌의 영명은 wallcreeper인데요. 심지어 나무타기사촌의 학명인 Tichodroma muraria에서 Tichodroma는 고대 그리스어로 벽을 뜻하는 τεῖχος와 달림을 뜻하는 δρόμος가 합쳐진 것이며, muraria는 벽을 의미하는 라틴어 murus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느낌을 살려보자면 나무타기사촌은 벽의벽달림이 정도로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벽이 제집처럼 편해보이는 이 나무타기사촌의 집은 벽입니다. / Radovan Václav on Flickr
벽이 제집처럼 편해보이는 이 나무타기사촌의 집은 벽입니다. / Radovan Václav on Flickr

나무타기사촌은 낮은 계곡에서 겨울을 나고, 여름이 되면 둥지를 틀기 위해 다시 해발 수천 미터의 산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고산병을 겪을 수도 있는 이 고도까지, 나무타기사촌들은 왜 굳이 올라가서 벽을 타는 것일까요. 이는 물론 나무타기사촌이 살기에는 좋은 곳이기 때문이겠죠. 나무타기사촌들이 서식하는 암벽에는 천적은 물론 먹이 경쟁자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나무타기사촌의 주식인 작은 절지동물들이 가득합니다. 다소 짧은 다리의 커다란 발과 발톱, 절벽에서의 비행에 유리한 넓은 날개, 보호색 역할을 하는 회색 깃털 등 암벽 지대에서 살아가기 적합하게 진화한 이 새들은 수직의 암벽을 자유롭게 오르내리죠.


높은 곳을 보는 나무타기사촌입니다. / Kookaburra 81 on Wikimedia commons
높은 곳을 보는 나무타기사촌입니다. / Kookaburra 81 on Wikimedia commons

오늘은 사실 나비사촌일지도 모르는 새, 나무타기사촌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혹시 나무타기나 나무타기사촌, 또는 붉은공작나비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주실 수 있는 분 및 관련 기관을 알고 계신 분의 제보 기대해보며,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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