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회색모우너

Cinereous mourner,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

※애벌레 사진 및 그와 유사한 것들이 있습니다.


매년 3월 27일은 국제연극기구(International Theatre Institute, ITI)가 지정한 세계 연극의 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년 3월 20일은 세계 아동청소년연극의 날이라고 하니, 3월은 연극의 달이라고 불려도 손색없지 않을까 싶군요. 그런 뜻에서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연기가 특기인 새를 하나 소개해볼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연기가 특기인 새 하면 생각나는 것은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한 물떼새류의 의상(擬傷) 행동일 텐데요.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더 이상한 새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색흑흑이입니다. / Hector Bottai on Wikimedia commons
회색흑흑이입니다. / Hector Bottai on Wikimedia commons

오늘 소개할 새의 이름은 회색모우너(cinereous mourner)입니다. Mourner라는 이름을 어떻게 번역할지에 대해선 문상객새, 조문객새, 울음꾼새, 우는새, 애도새, 흑흑이, 흐규흐규, 따흐흑새 등의 다양한 안건이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영명인 모우너를 그대로 읽기로 하였습니다. 이름처럼 회색인 이 새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유역 열대 삼림에 서식합니다. 


설마 이 새가 이 세상 모든 장례식장을 찾아가며 조문을 다니진 않았을 테니, 회색모우너라는 이름은 울음소리에서 유래되었을 것입니다. 위 영상에서 회색모우너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실 수 있는데요. 앞에서 회색모우너를 연기가 특기인 새라고 소개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새의 연기는 문상과 관련되어 있을까요. 사실 저 가녀리게 이어지는 슬픈 목소리는 연기일 뿐으로, 애도의 마음은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일까요. 물론 저 울음소리에 애도의 뜻이 들어있진 않겠지만, 문상은 이 새의 연기와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성조 역시 연기에 뛰어나긴 합니다만, 회색모우너의 연기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입니다.


애벌레를 연기 중인 주황애벌레입니다. / Photo credits: Santiago David-Rivera
애벌레를 연기 중인 주황애벌레입니다. / Photo credits: Santiago David-Rivera

글머리에 붙어있던 주의문대로 드디어 애벌레 같은 것이 등장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태어난 지 14일이 지난 회색모우너의 새끼인데요. 끝부분이 흰 선명한 주황색의 솜털로 덮인 이 어린 새는 회색 깃털의 성조와 전혀 닮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솔직히 새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어린 회색모우너는 외모만 애벌레와 닮은 것이 아닌데요. 위 영상의 앞부분에서 어린 새는 천천히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특이한 행동을 합니다. 주황색의 복슬복슬한 솜털과 독특함 움직임은 저 어린 새가 완연한 애벌레로 보이게 하죠. 그리고 이어지는 부모새의 행동에도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배고픈 어린 새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둥지에 도착한 부모는 바로 먹이를 주지 않고 둥지 가장자리에 앉아 한참 주위를 살핍니다. 마치 이 애벌레 같은 것이 정말 내 새끼가 맞는지 거듭 확인이라도 해보듯 말이죠.


회색애벌레와 주황모우너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회색애벌레와 주황모우너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회색애벌레와 주황모우너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그렇다면 과연 이 가족이 이와 같은 연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의 두 사진은 똑같은 주황복슬이로 보이는데요. 왼쪽의 복슬이는 회색모우너의 새끼이며, 오른쪽의 복슬이는 사실 독성을 가진 나방의 애벌레입니다. 피식자가 천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독이 있거나 해로운 것을 모방하는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는 자연상에 드문 일은 아닙니다만, 새가 곤충을 따라 하는 사례는 회색모우너가 최초라고 하는군요.


태어난 지 4일 된 회색모우너와 알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태어난 지 4일 된 회색모우너와 알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회색모우너 새끼의 복슬복슬한 주황색 솜털은 애벌레를 따라 하여 천적을 속일 뿐만 아니라 보호색의 역할 역시 수행한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마른 잎으로 만든 둥지 위에서 주황색의 알과 새끼는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보호색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면, 회색모우너는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꿈틀꿈틀 애벌레같이 굴기 시작합니다.


부화 1일 차부터 끝이 흰 주황색 털이 보송보송하게 자라 있습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부화 1일 차부터 끝이 흰 주황색 털이 보송보송하게 자라 있습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 전 한참 주위를 살피는 부모의 독특한 행동 역시 천적으로부터 둥지를 지키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추측됩니다. 어린 회색모우너는 다른 어린 새들과 달리 둥지에 부모가 찾아와도 빨리 먹이를 달라고 조르지 않는데요. 그것은 지금 둥지에 접근한 것이 부모일지 천적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도 열심히 애벌레 행세를 하고 있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발각되어 이 애벌레가 새끼새라는 것이 알려지면 굉장히 곤란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주위에 다른 천적이 없는지를 한참 살핀 후에야 새끼새를 부르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부모새의 소리를 듣고서야 새끼는 먹이를 조른다고 하는군요.


태어난 지 18일쯤 되자 제법 새 태가 납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태어난 지 18일쯤 되자 제법 새 태가 납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회색모우너가 서식하는 열대우림은 포식자에게 둥지를 공격받는 빈도가 높은 지역입니다. 심지어 회색모우너는 몸의 크기에 비해 성장 기간이 긴 새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린 새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이와 같이 독특한 의태 행동을 하게 되었다고 추측되는데요. 성장하면서 애벌레스러운 생김새나 행동은 점점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것은 새벌레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이것은 새벌레입니다. / Figure adapted from Gustavo A. Londoño et al. (2015).

오늘은 정말로 독특한 연기를 하는 새, 회색모우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글을 다 쓸 때까지도 회색모우너라는 이름이 영 손에 붙지 않아서 역시 회색흑흑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았을까 몰래 생각해보며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Gustavo A. Londoño, Duván A. García, and Manuel A. Sánchez Martínez, "Morphological and Behavioral Evidence of Batesian Mimicry in Nestlings of a Lowland Amazonian Bird.," The American Naturalist 185, no. 1 (January 2015): 135-141.

새 글을 씁니다

새을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1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