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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하우

Cahow, 버뮤다의 악마

라자루스 분류군(Lazarus tax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과거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다가 다시 발견된 종을 칭하는 용어로,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에 의해 부활한 나사로의 이름을 본떴다고 하는군요. 아마도 예상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오늘의 포스트에선 라자루스 분류군에 속하는 새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커하우의 양면입니다. / ⓒ Bermuda Audubon Society커하우의 양면입니다. / ⓒ Bermuda Audubon Society

오늘 소개할 새는 커하우입니다. 독특한 울음소리가 커하우- 커하우- 라고 들린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죠. 커하우는 버뮤다에만 서식하는 새로, 버뮤다의 국조이며 버뮤다의 화폐에서도 볼 수 있는 새입니다. 그래서 커하우는 버뮤다슴새(bermuda petrel)라고 불리기도 하죠. 커하우는 삶의 대부분을 하늘에서 보내는 멋진 새입니다. 대서양의 폭풍에서 비롯된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이 새는, 돌고래처럼 양쪽의 뇌가 번갈아 깨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면서도 날 수 있죠.


어두운 둥지와 커하우와 알입니다. / ⓒ The Nonsuch Expeditions

이 새가 땅에 내려오는 것은 번식을 할 때뿐인데요. 둥지를 떠나고 수컷은 3~4년, 암컷은 4~6년을 바다에서 보낸 후, 커하우는 자신이 태어났던 섬에 처음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커하우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 가까이 둥지를 트는데요. 둥지를 튼 첫해에 알을 낳는 것은 꽤 드문 일이라고 하니, 커하우들에게도 둘만의 신혼을 즐기는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야행성 조류인 커하우는 어두운 굴속의 둥지에 보통 하나의 알을 낳고, 암수가 번갈아 두 달을 품습니다. 약 40년의 긴 시간 동안 평생을 부부로 사는 이 새들은 느긋하고 삶의 호흡이 긴 바닷새였죠.


부화하고 4주가 지난 커하우는 놀라울 정도로 빵빵한 회색 솜공이 됩니다. / ⓒ The Nonsuch Expeditions

인간들에게 발견되기 전의 버뮤다는 커하우들의 천국으로, 수백만 마리 이상의 커하우들이 버뮤다 제도의 모든 섬에 거쳐서 번식하고 있었죠. 커하우들에게 찾아온 첫 번째 위기는 1500년대 초반 스페인 선원들의 방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버뮤다에 남겨둔 돼지들은 커하우의 개체수를 90% 가까이 감소시켰죠. 만약 이 스페인 선원들이 버뮤다에 정착했다면 커하우는 1500년대에 멸종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페인 선원들은 버뮤다를 악마가 사는 섬이라고 생각하여 정착하지 않았는데요. 그들이 악마의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한밤중에 들려오는 수백만 마리의 커하우 울음소리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8주가 지나며 회색 솜공은 제법 새로서의 자아를 확립했습니다. / ⓒ The Nonsuch Expeditions

그리고 1609년, 버지니아 식민지로 향하던 영국의 기함인 시 벤처(Sea venture)호가 허리케인을 만나며 버뮤다에 난파됩니다. 커하우의 개체수가 많이 줄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인지, 영국인들은 버뮤다의 악마를 찾지 못하고 1612년부터 버뮤다에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620년대에 커하우는 완전히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죠. 수백만 마리가 넘던 커하우들은 고작 백여 년만에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1951년 다시 발견된 커하우의 역사적인 사진입니다. / ⓒ The Nonsuch Expeditions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커하우는 라자루스 분류군에 속하는 새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커하우는 얼마나 오래 사라져 있었을까요. 1930년 초반, 버뮤다에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커하우의 시체가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51년 조직된 탐사대가 10여 쌍의 살아있는 커하우를 발견하며 이 새는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620년대부터 1951년까지, 커하우의 재발견에는 무려 3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였는데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시 벤처호의 난파 사건을 보고 '템페스트(The Tempest)'를 집필하였으니, 셰익스피어 시대에 멸종한 새가 20세기에 살아 돌아온 것이죠.


멋지게 성장한 이 솜공은 곧 먼 길을 떠날 것입니다. / ⓒ The Nonsuch Expeditions

커하우의 귀환은 기쁜 일입니다만, 여전히 그 개체수는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적은 개체수도 천적 및 기후변화와 같은 이유로 인해 줄어들고 있었죠. 커하우가 발견되자마자 다시 멸종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커하우들의 번식을 위해 인간들은 어떤 일을 했을까요. 불필요한 장거리비행이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했을까요. 아니면 어두운 곳이 아니면 둥지를 틀지 않는 사회 관습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를 개발하였을까요. 혹시 가상슴새 기술을 통한 배우자 탐색 시스템은 개발하지 않았을까요.


커하우를 위한 아늑한 지하주택의 설치현장입니다. / ⓒ Bermuda Audubon Society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은밀히 진행되는 무해한 음모 대신 실질적이고 도움되는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쥐나 돼지와 같은 커하우의 천적을 박멸하는 것이었습니다. 흰꼬리열대새와 같은 불청객이 찾아올 수 없는 어둡고 아늑한 인공 주택 지원과, 알껍데기를 얇게 만드는 DDT의 사용 금지 역시 어린 커하우의 생존률을 높여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전체적인 생태계 회복을 위해 100종이 넘는 식물 수천 그루를 심고, 태풍과 기후 변화로 인한 둥지 침수를 막기 위해 어린 커하우를 고지대로 이주시키는 등 다양한 방면의 노력이 있었죠. 특히 1951년 당시 16세의 나이로 탐사대에 참여한 데이빗 윈게이트(David B. Wingate) 씨의 경우, 이후 동물학을 전공하여 1957년부터 50년 이상 커하우의 보호에 힘써 2012년엔 그의 보호활동에 관한 전기문이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깊은 눈을 가진 회색 솜공이 바로 소머스입니다. / ⓒ A. Copeland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커하우의 개체수는 22년마다 두 배씩 늘어, 2017년 초반인 지금은 300마리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고지대로 이주되어 인공 포육된 이주 1세대 커하우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이주 2세대 커하우의 이름은 소머스(Somers)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 벤처호를 이끌고, 영국인들이 버뮤다에 정착하는 데에 일조한 사람인 조지 소머스(George Somers)의 이름을 본뜬 것이죠. 종족의 원수라고도 볼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을 어린 커하우에게 붙여준 부분은 인간이 조금 무신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쩌면 원수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름 삼은채 지옥에서 올라온 커하우 스스로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죠.


이 멋진 바닷새를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the Nonsuch Expeditions에선 커하우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버드 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마리의 성조와 하나의 알로 이루어진 이 캠의 부모새는 고지대 이주 1세대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짝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군요. 1월에 태어난 저 알은 3월 초쯤 부화할 것이라 하니 지금쯤이 캠을 보기 시작할 적기가 아닐까 합니다. 저 알의 무사 부화와, 커하우 대번성을 빌며 이번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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