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캐나다의 국조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큰아비에 관한 포스트를 작성하였는데요. 큰아비에게는 안타깝게도, 캐나다의 국조로는 다른 새가 선정되었습니다. 얼마 전이었던 2월 15일이 마침 캐나다 국기의 날이기도 하니, 오늘은 캐나다의 국조로 선정된 새에 관해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그란 회색어치입니다. / Tim Harding on Flickr
동그란 회색어치입니다. / Tim Harding on Flickr

이 통통하고 귀여운 새가 바로 캐나다의 국조가 된 회색어치입니다. 어치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회색어치는 계통적으로 어치보다 물까치에 가까운데요. 동글동글한 체형 때문에 사진으로 보기엔 오목눈이나 박새같이 작은 새일 것 같습니다만, 회색어치는 몸길이가 30cm에 이르는 꽤 큰 새입니다. 암수는 겉보기에 거의 동일하지만 수컷이 암컷보다 조금 더 크다고 하는군요.


서로 정다운 회색어치 한 쌍입니다. / Dan Strickland at the English language Wikipedia
서로 정다운 회색어치 한 쌍입니다. / Dan Strickland at the English language Wikipedia

회색어치는 한 상대와 평생 짝을 이루는 새로, 번식기가 되면 수컷이 둥지를 틀기 시작하는데요. 둥지 공사의 초반엔 수컷이, 후반으로 갈수록 암컷이 주로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둥지가 완성되면 알품기는 암컷이 혼자 하는데, 수컷이 암컷을 위한 먹이를 물어다 주기 때문에 이 시기의 암컷은 둥지를 거의 떠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새끼 회색어치들은 첫 털갈이 전까지 검은 깃털을 가지고 있지만 검은 어치라고 불리진 않습니다. / Dan Strickland at the English language Wikipedia
새끼 회색어치들은 첫 털갈이 전까지 검은 깃털을 가지고 있지만 검은 어치라고 불리진 않습니다. / Dan Strickland at the English language Wikipedia

부화한 회색어치의 새끼는 암수가 함께 키우는데요. 재밌는 것이, 이 회색어치 부부는 새끼를 키우기 위해 청소년 베이비시터를 고용합니다. 이 베이비시터들은 지난 시즌의 번식기에 태어나서 아직 교미를 하지 않는 회색어치들로, 대부분 한 마리의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만 간혹 두 마리가 고용되는 둥지도 있다고 하는군요. 이 베이비시터들은 둥지를 짓는 시기에 고용되는데, 새끼들이 충분히 성장하여 둥지를 떠날 수 있게 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새끼가 어릴 때 둥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베이비시터는 새끼들의 안전 문제로 둥지에서 쫓겨나 적절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전분을 묻힌 찹쌀떡 같은 눈 둥지 속의 회색어치입니다. / Dan Strickland at the English language Wikipedia
전분을 묻힌 찹쌀떡 같은 눈 둥지 속의 회색어치입니다. / Dan Strickland at the English language Wikipedia

회색어치들은 주로 이른 3월에, 빠른 경우엔 2월에 둥지를 짓기도 합니다. 캐나다의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 회색어치들은 다양한 방한 대책을 철저하게 마련하였는데요. 먼저 이 새들은 굉장히 빵빵하고 복슬거리는 깃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송보송한 솜털은 콧구멍까지 덮고 있어 회색어치들이 코가 시릴 것을 예방해주죠. 어쩌면 암컷이 혼자 알을 품는 것도 수컷과의 교대시간을 없애 알이 찬 공기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겠군요.


냠냠. / Steve Valasek on Flickr
냠냠. / Steve Valasek on Flickr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먹이 공급입니다. 회색어치는 따뜻한 시기에 구한 먹이를 나무 틈 등에 저장하여 겨울을 나곤 합니다. 이때 식량은 끈적이는 타액으로 감싸인 볼러스(bolus) 형태로 저장하여 부패를 막는데요.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에 서식하는 회색어치의 경우 저장한 음식의 부패 가능성이 높고, 겨울에도 먹이를 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북쪽의 회색어치보다 먹이를 적게 저장한다고 합니다.


배낭이 열려있는 걸 보니 이미 털고 나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brewbooks on Flickr
배낭이 열려있는 걸 보니 이미 털고 나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brewbooks on Flickr

또한 회색어치는 먹이를 가리지 않는데요. 벌레나 열매는 물론이며, 자신의 몸보다도 커다란 상대를 공격하는 것도 목격된다고 합니다. 그 먹이 공급원에선 인간도 예외가 될 수는 없는데요. 다행히도 회색어치는 인육보다는 인간의 음식을 더 선호하는 모양입니다. 인간의 식량을 약탈하는 이러한 습성 덕에, 회색어치는 lumberjack, camp robber, 또는 venison-hawk와 같은 다양한 이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식량을 서슴지 않고 빌려 가는 회색어치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주는 음식 역시 거절하지 않습니다. 똑똑하고 겁이 없는 이 새는 인간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커다랗고 빵빵하고 귀여운 새가 자신에게 날아와서 손 위에 앉거나 먹이를 먹고 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회색어치에게 홀리는 것도 같습니다. 혹시 이것이 회색어치가 국조 선정에서 조류학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캐나다의 자랑 회색어치입니다. / https://twitter.com/CanGeo/status/799072069719883777
캐나다의 자랑 회색어치입니다. / https://twitter.com/CanGeo/status/799072069719883777

굳이 조류학자들을 홀리지 않더라도, 회색어치는 캐나다와 정말 잘 어울리는 새입니다. 회색어치는 1년 내내 캐나다에 머무는 텃새이기 때문에 캐나다어치(canada jay)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요. 이 새의 학명은 Perisoreus canadensis로, 학명까지 정말로 캐나다스럽습니다. 또한 회색어치는 캐나다 원주민 신화의 유쾌한 트릭스터 신인 Wisakedjak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이를 영어화한 whiskey jack는 회색어치의 보편적인 이명입니다.


조금 덜 동그란 상태의 회색어치입니다. / Cephas on Wikimedia commons
조금 덜 동그란 상태의 회색어치입니다. / Cephas on Wikimedia commons

회색어치는 솔직히 큰아비나 흰올빼미와 같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일반적인 인지도는 떨어지는 새입니다. 국조로 선정되었을 당시 '회색... 뭐?'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죠. 하지만 똑똑하고 붙임성 좋은 이 새라면 조만간 전 캐나다인들을 홀릴 것이라고 믿으며, 사람들의 식량과 마음을 훔치는 새에 관한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새한테 누가 안 홀리고 배길 수 있을까요. / Robert Engberg on Flickr
이런 새한테 누가 안 홀리고 배길 수 있을까요. / Robert Engberg on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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