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동박새

Japanese white-eye,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동백꽃이 피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빠른 동백꽃들은 이미 1월부터 개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압니다만 제 마음의 동백꽃은 며칠 전 입춘을 맞으며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 뜻에서 오늘은 동백꽃 하면 생각나는 새에 관한 포스트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백꽃과 동박새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동백꽃과 동박새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오늘 소개할 새는 바로 동박새입니다. 동백꽃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여 이런 예쁜 이름이 붙었으며, 제주도에선 동박생이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불린다고 하는군요. 꽃이 들어가는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동박새는 꿀이나 열매를 즐기는 새입니다. 이러한 식성 덕에 동박새는 조매화들의 수분을 도와주는 새이기도 한데요. 특히나 벌과 나비가 없는 겨울에 개화하는 동백꽃이 동박새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굉장히 잘 알고 있는 듯한 동박새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굉장히 잘 알고 있는 듯한 동박새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동박새의 외모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라면 역시 하얀 눈테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때문에 동박새의 외국 이름을 살펴보면 이 매력포인트를 부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박새의 영명은 japanese white-eye, 일명은 메지로(目白, メジロ)인데요. 흰 눈이라는 굉장히 직관적인 이름이죠. 중국에서 동박새는 안뤼시우얜냐오(暗绿绣眼鸟, ànlǜxiùyănniăo)라고 불리는데요. 하얀 눈테가 마치 눈가에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런 예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밤색 옆구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 Charles Lam on Flickr
자신의 밤색 옆구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 Charles Lam on Flickr

이름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다른 새 얘기를 해보자면, 동박새류의 새 중엔 이름에 한국이 들어가는 새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동박새(Zosterops erythropleurus)이지요. 동박새보다 조금 더 작은 이 새는 옆구리의 갈색 깃털이 특징적인데요. 한국동박새의 영명은 chestnut-flanked white-eye로, 번역해보면 밤색옆구리동박새가 되겠습니다. 이름에 한국이 들어가니 일 년 내내 한반도에 서식하는 텃새일 것 같은 이 새는 놀랍게도 철새입니다. 하지만 동박새는 텃새이죠. 이런 것이 세상의 부조리 아닐까요.


잠시 동박새팸의 밤옆구리에 관해 알아보았으니, 다시 동박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동박새는 울음소리가 굉장히 아름다운 새 중 하나인데요. 일본에선 예전부터 동박새가 애완동물로 인기가 많았으며, 가장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가진 동박새가 누구인지를 겨루는 대회가 열리곤 하였습니다. 이 전통은 서일본을 중심으로 현대까지 이어졌는데요.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동박새가 수백만 엔을 호가하는 고가에 거래되며, 사람들은 동박새를 밀렵하거나 한국 및 중국에서 밀수입하기도 하였죠. 이러한 많은 문제 때문에, 일본에서 현재 사육 목적의 동박새 포획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동박새들의 실력을 겨루는 순수한 컴페티션은 돈과 불법으로 얼룩지고 말았지만, 일본에는 동박새의 습성에서 본뜬 귀여운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메지로오시(目白押し, めじろおし)인데요. 동박새들은 서로 밀어내는 것 같이 보일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앉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서로 일렬로 늘어서서 밀어내고 노는 것을 메지로오시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많은 사람이나 물건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다고 하네요.


하와이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이 사진은 와이콜로아 해변에서 찍혔다고 합니다. / Michael Klotz on Flickr
하와이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이 사진은 와이콜로아 해변에서 찍혔다고 합니다. / Michael Klotz on Flickr

동박새는 한중일의 고전 시가에 자주 등장해오던 새이기 때문인지, 왠지 아시아에만 서식하는 아시아의 새라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파오리처럼 말이죠. 실제로 동박새는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새입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동박새는 상당히 의외의 곳에서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하와이에서 말이죠. 동박새는 1929년, 해충구제를 위해 하와이에 처음 유입되었습니다. 하와이의 꽃과 자연이 취향에 맞았는지, 동박새는 새로운 환경에 놀랍도록 잘 적응하였죠. 동박새는 하와이에서 적응을 넘어, 자신의 세력을 점점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조류 말라리아에 대한 내성 등 토착 조류에겐 없는 장점들을 보유한 동박새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하와이에서 꿀을 빨며 사는 게 쉽진 않은지, 눈에 수심이 가득해 보입니다. / Ludovic Hirlimann on Flickr
하와이에서 꿀을 빨며 사는 게 쉽진 않은지, 눈에 수심이 가득해 보입니다. / Ludovic Hirlimann on Flickr

하와이의 많은 새가 멸종하거나, 또는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동박새와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그중에서도 동박새와 마찬가지로 꿀을 먹는 하와이꿀빨이새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하와이의 식물들을 수분해주던 많은 새들이 멸종하면서 토착 식물의 존망 역시 우려되었었는데요. 이 토착식물들의 수분은 동박새가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고 합니다. 기존의 생태계에 영향을 준 동박새를 구제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재 동박새가 하와이의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이 또 참 아이러니하죠.


예쁩니다. / llee_wu on Flickr
예쁩니다. / llee_wu on Flickr

오늘은 꽃이 잘 어울리는 예쁜 새인 동박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원서식지에선 밀렵으로 고통받는 예쁘고 가련한 새가 어딘가에선 외래종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만, 예쁜 동박새 사진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번 포스트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 부제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의 가사를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새 글을 씁니다

새을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