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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쑥들꿩

Greater sage-grouse, 가슴으로 하는 사랑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슴으로 하는 것인지, 또한 정말로 머리와 가슴은 사이가 나쁜 것인지 하는 의문은 유사 이래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오곤 하였습니다. 그 대답과는 별개로, 우리는 사랑과 가슴이라는 두 단어가 같이 들어간 문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사랑을 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고도 하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정말로 사랑을 가슴으로 하는 새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컷 산쑥들꿩의 제 1단계입니다. / © David Andreas Tønnessen (CC BY-NC)

오늘 소개할 새는 산쑥들꿩입니다. 수컷은 몸길이가 70~80cm, 암컷은 50~60cm 정도로 수컷이 암컷보다 큰 새이죠. 산쑥들꿩의 수컷은 거대할 뿐만 아니라 아주 화려하게 생기기도 하였는데요. 목 둘레에는 하얀 깃털을 두르고 있으며, 눈 위에는 노란 피부가 드러나 있는 것이 눈화장을 한 것 같습니다. 목 앞쪽과 배의 깃털은 목 둘레의 하얀 깃털과 대비되는 검은색이며, 등과 날개는 흰 반점이 박힌 회갈색을 띠죠. 아주 길고 뾰족한 꽁지깃 역시 산쑥들꿩 수컷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반면 암컷의 깃털은 전체적으로 흰 반점이 있는 회갈색이며, 배 깃털만 다른 부분에 비해 짙은 색을 띱니다.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Sage Grouse Initiative(Rick McEwan) on Flickr

지금까지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한 수컷입니다만, 번식기가 되면 수컷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됩니다. 온몸의 깃털을 잔뜩 부풀린 수컷은 새보다는 구형의 깃털 뭉치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꼿꼿하게 세운 긴 꽁지깃은 모든 시선을 수컷 산쑥들꿩에게 집중시킵니다. 목에 두른 하얀 깃털 역시 다른 깃털과 마찬가지로 잘 부풀어 털목도리같이 변하며, 머리 뒤에도 가늘고 긴 깃털들이 장식적으로 나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죠.


최종 단계의 수컷 산쑥들꿩입니다. / © Bert Filemyr (CC BY-NC)

몸과 목도리와 꽁지깃을 부풀려 세웠으면 이제 정말 더는 부풀릴 부위가 없을 것 같지만, 수컷 산쑥들꿩의 잠재력은 겨우 이 정도가 끝이 아닙니다. 번식기의 수컷은 목에 있는 두 개의 피부 주머니에 공기를 넣어 부풀리고, 주머니를 흔들고 소리를 내며 구애하는데요. 이 피부 주머니는 노른자 두 개 또는 가슴이나 고환에 비유되곤 합니다. 부적절한 비교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번식에 필수불가결하단 점에 한해선 앞의 예시 중 고환과 제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다면 무엇이 수컷 산쑥들꿩으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유난스러운 구애를 하게 만든 것일까요. 산쑥들꿩은 번식기가 되면 수컷들이 렉(lek)이라는 공동 구애장소에 모여 암컷에게 구애하는 새입니다. 암컷은 수컷의 구애를 보고 수컷을 선택하기 때문에, 수컷으로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죠. 산쑥들꿩과 마찬가지로 렉을 만드는 새로는 목도리도요큰초원뇌조, 느시 등이 있는데요. 이 새들의 구애도 산쑥들꿩 못지않게 유난스럽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수컷들이 이렇게 열심히 애쓰더라도, 암컷과 교미하는 수컷은 한두 마리 정도이며 다른 수컷들은 교미의 기회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컷의 시선을 엄청 의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L Pittman (CC BY-NC)

산쑥들꿩은 피부 주머니가 특징적인 것으로 가장 유명할 텐데요. 이 세상엔 가슴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 새의 이름에 가슴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꽤 신기한 일입니다. 그 대신, 이 새들에겐 주식인 쑥속의 식물 중 하나인 산쑥이 들어가는 이름이 붙게 되었죠. 마찬가지로 산쑥들꿩의 영명인 greater sage-grouse에도 쑥속 식물을 통칭하는 단어인 sage(brush)가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래가 다른 이름은 어떨까 하여 일본 이름인 키지오라이쵸(雉子尾雷鳥/キジオライチョウ)을 확인해 보니, 직역하면 꿩꼬리뇌조가 되는데요. 이는 수컷 산쑥들꿩의 꽁지깃이 수컷 꿩처럼 길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여기서도 가슴 얘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잘생긴 사진으로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 Bureau of Land Management(Bob Wick) on Flickr

오늘은 아주 빵빵한 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산쑥들꿩이란 이름은 산도 들도 들어가는 것이 참 재밌는 이름이 아닌가 싶은데요. 어떤 가능세계에선 산쑥들꿩이 들쑥산꿩이라고 불리진 않을까 생각해 봤는데, 말해 놓고 보니 너무 들쑥날쑥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들꿩, 물꿩, 바다꿩, 사막꿩 등 다양한 곳에서 살아가는 꿩들에 관해 소개하기로 하며, 이번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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