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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새

Eurasian bullfinch, 멋쟁이 중의 멋쟁이

저는 북극곰이 아니고 제가 사는 이곳은 북극이 아닌데,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인지 북극 한파가 자꾸 찾아오고 있습니다. 기온이 뚝뚝 떨어져 감에 따라 '얼어 죽어도 코트', 줄여서 얼죽코 협회 회원님들의 신념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요. 얼죽코 회원님 중에는 간혹 패딩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패션과 멋에 긍지가 있는 멋쟁이 분들이실 것입니다. 오늘은 그런 멋쟁이들을 위해, 겨울이면 찾아오는 어느 멋쟁이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멋진 부리로 멋지게 씨앗을 까는 멋쟁이 멋쟁이새 수컷입니다. / MILD on フォト蔵

오늘 소개할 멋쟁이 새는 멋쟁이새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주 멋지며, 몸길이는 약 15cm 정도로 작은 편이지만 몸에 가득 차 있는 멋있음은 결코 작지 않죠. 멋쟁이새는 유라시아에 서식하는 새인데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1년 내내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여름에는 북쪽에서 번식을 한 후 한국이나 일본, 중국 남부로 내려와 겨울을 나기도 합니다. 멋쟁이새는 이름에서 새를 빼고 멋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 세상엔 멋쟁이새는 아니지만 멋쟁이인 분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 이 포스트에서는 오늘의 주인공을 멋쟁이새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멋쟁이새 암컷의 멋진 눈빛이 멋집니다. / Sergey Yeliseev on Flickr

멋쟁이새는 검은 머리와 꽁지를 가지고 있어, 문자 그대로 수미상관(首尾相關)을 이루는 새입니다. 그리고 등은 겨울 코트같은 청회색 깃털로 덮여 있죠. 멋쟁이새의 암수는 배를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요. 암컷은 목과 가슴이 전부 회갈색인 반면, 수컷은 목과 가슴이 발그레한 빛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멋쟁이새의 학명인 Pyrrhula pyrrhula에서 pyrrhula는 고대 그리스어로 불꽃 같은 색을 띤다는 의미의 πυρρός가 그 유래라고 하는데요. 듣고 보니 수컷의 붉은 가슴은 타오르는 불꽃, 암컷의 흰 가슴은 불꽃이 사그라든 후의 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붉은배멋쟁이새의 빨간 배는 눈 속에서 더 도드라지며, 자몽에이드를 닮았습니다. / Jussi-Teppo Toivonen on Flickr

멋쟁이새는 수컷 가슴이 붉은 정도에 따라 다양한 아종으로 분류되는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아종은 그중 셋 정도입니다.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아종인 P. p. rosacea는 가슴까지 불그스레하며, 일반적으로 멋쟁이새라 하면 이 아종을 뜻하죠. 그리고 가슴까지 붉은색이 내려가지 못해서 턱 밑만 발갛게 물든 재색멋쟁이새(P. p. cassinii)와, 붉은색이 가슴을 넘어 거의 엉덩이 끝까지 내려간 붉은배멋쟁이새(P. p. griseiventris)도 아주 드물게 한국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멋쟁이새들은 아종이니 서로 교배가 가능하고, 이 때문에 붉은색의 경계선이 어중간한 멋쟁이새들이 관찰되기도 하는데요. 배의 색이 어떻든 간에 멋쟁이라는 것은 변함없으니, 호칭을 고민할 필요 없이 전부 멋쟁이라고 불러주도록 합시다.


배가 잿빛인 재색멋쟁이새는 볼이 발그레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일본에서는 재색멋쟁이새와 멋쟁이새를 각각 우소(鷽, ウソ)와 아카우소(赤鷽, アカウソ)라 부르는데요. 이는 휘파람을 뜻하는 고어 우소(嘯, うそ)가 유래로, 멋쟁이새의 '휘익휘익' 하는 울음소리가 휘파람같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카우소는 번역하면 '붉은 재색멋쟁이새'가 되는데, 일본에선 멋쟁이새보다 재색멋쟁이새를 더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우소는 일본어로 거짓말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정월이면 일부 신사에선 나무로 만든 멋쟁이새 조각을 교환한다고 합니다. 이는 작년의 나쁜 일들은 거짓인 것으로 하고, 새해엔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하는데요. 그런다고 과거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조각을 없애지 않고 교환하는 것뿐이라면 액운을 돌려막기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거짓인 셈 칠 수 있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뿐이며 자기 잘못은 바꿀 수 없다는 경고도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새해를 잘 살아나가기 위한 에너지와 희망을 얻는 것인가 싶네요.


숲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느낌을 위해 조금 가려진 사진을 골라 보았습니다. / harum.koh on Flickr

오늘은 겨울 멋쟁이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한국에서 겨울을 나는 작고 예쁜 붉은 새를 소개하는 것은 양진이에 이어 두 번째인데요. 양진이는 행운을 주는 새라고 알려진 적이 있고, 멋쟁이새도 지난 액운을 없애주는 새이니 행운의 새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이 포스트를 읽고 있는 여러분께 행운과 행복이 함께하길 바라며,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익은 감과 붉은배멋쟁이새를 구분하는 것은 / nutmeg66 on Flickr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 Sergey Yeliseev on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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