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배드_헤어_데이.jpg

머리 멋지네요

날이 건조해지고 강한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며, 머리카락이 자아를 갖고 혼자서 움직이는 것 같은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나마 인간은 머리 위주로 긴 털이 존재합니다만, 전신이 털로 싸여 있는 크고 작은 보송보송한 친구들은 기분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몇 주 전 소개했던 아가 황로들은 아직 솜털이 짧기 때문에, 어지간히 바람이 불더라도 조금 보송보송해지는 수준일 텐데요. 하지만 만약 깃털이 더 긴 경우라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감히 추측하기 두렵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아주 긴 깃털이 제멋대로인 새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필드 보스] Lv.45 분노한 각성 백로(이/가) 출현하였습니다! 57초 후 레이드가 시작됩니다.

오늘 소개할 짤들은 이것입니다. 스스로도 자신의 깃털을 감당 못하는 듯한 오늘의 주인공과, 그를 피하는 다른 새들을 통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는 짤이죠. 오늘의 주인공은 게임에 강한 적으로 등장할 것 같은 새 짤로 알려지기도 하였는데요. 대부분의 경우 다른 새들은 오늘의 주인공을 보고 겁먹어 도망치는 것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도망친다기보단 못 볼 꼴을 봤다는 듯이 그 자리를 떠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사진의 원출처는 여기이며, 2016년 2월 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촬영되었다고 하네요.


멋지게 등장하는 오늘의 주인공 눈백로 씨를 모두 박수로 맞아 주시길 바랍니다. / j van cise photos on Flickr

오늘의 짤에 등장하는 새들은 눈백로(snowy egret)입니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에서 볼 수 있으며, 오늘 사진의 배경이기도 한 북아메리카의 남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새이죠. 몸길이는 56~66cm 정도로 꽤 큰 편인데, 백로들 사이에선 중간 정도의 크기입니다. 눈(目x 雪o)과 흼(白)이 들어가는 이름에 어울리게, 눈백로는 온몸이 새하얀 깃털로 덮여 있는데요. 이와 대비되게 다리와 부리는 검은색이며, 얼굴의 피부와 발은 샛노란 색인 것도 눈(目o 雪x)에 띄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죠.


힘을 모으고 있는 눈백로입니다. / Keith Carver on Flickr

그럼 이어서 오늘의 주인공이 왜 이렇게 부숭부숭해진 것인지를 알아보도록 할 텐데요. 가장 합리적인 추측으로는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은 후,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각성하게 되었다는 것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눈백로의 길고 흩날리는 깃털은 번식깃일 뿐 새로운 힘과는 관련이 없었는데요. 눈백로의 번식기는 3월쯤 시작된다 하니 2월 말이면 슬슬 번식깃을 기르며 가꾸고 단장할 시기이죠. 수컷 눈백로는 자기 영역에서 경쟁자를 쫓아내거나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번식깃을 펴고, 몸을 위아래로 흔들거나 하늘을 향해 부리를 드는 동작을 취하는데요. 오늘의 사진에서 번식깃을 편 눈백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새는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저 자리에 있던 것은 전부 경쟁자였던 모양입니다.


한 마리 같은 두 마리입니다. / Carol Foil on Flickr

스스로도 감당이 안되는 것 같다거나 강한 힘을 얻은 것 같다고 놀리긴 했습니다만, 눈백로의 길고 보드라운 번식깃이 아름답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인데요. 그래서 눈백로의 번식깃은 인간의 치장에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용처는 모자를 장식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19세기 말까지 깃털을 얻기 위해 수많은 눈백로가 희생되었으며, 그 개체수는 어마어마하게 줄었습니다. 다행히 그 후 보호를 시작하며 눈백로의 개체수는 회복되었고, 우리는 보송한 눈백로를 다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죠.


진정한 멋짐과 강함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눈백로입니다. / Ken Chan on Flickr

오늘은 온몸의 깃털을 멋지게 세운 눈백로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의 사진은 'bad hair day'라는 제목과 함께 올라오는 일이 많은데요. 이는 직역하면 머리가 엉망인 날이며, 의역하면 일진이 안 좋은 날을 의미합니다. 긴 깃털을 세운 모습이 번식기의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 저 스타일은 눈백로들 사이에선 엉망이긴 커녕 최고로 멋진 머리가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짝은 찾지 못하고 경쟁자를 쫓아내느라 힘만 뺀 날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번식기의 수컷 눈백로에게 있어선 재수 없는 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멋진 모습을 선보이긴 한 것 같으니,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 멋진 짝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지요. 다음 포스트에선 또 다른 멋진 모습의 새를 소개하기로 하며,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새 글을 씁니다

새을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