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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울새

European robin, 친절한 붉은 왕

유럽 상징은 남성으로서의 유럽울새와 여성으로서의 굴뚝새로 시작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눈치채셨을 것 같지만, 지난주의 굴뚝새 얘기에 이어 이번 주엔 유럽울새에 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지어 굴뚝새는 지나간 해, 유럽울새는 새해를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니 오늘은 정말로 유럽울새에 관한 글을 쓰기 마땅해 그지없는 날이라 볼 수 있죠.


인간의 남근 사진은 여러 이유로 업로드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유럽울새 가슴으로 대체합니다. / © Francis C. Franklin / CC-BY-SA-3.0
인간의 남근 사진은 여러 이유로 업로드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유럽울새 가슴으로 대체합니다. / © Francis C. Franklin / CC-BY-SA-3.0

현실의 유럽울새는 암컷도 수컷도 전부 존재합니다만, 상징에서의 유럽울새는 왜 남성으로 여겨지게 되었을까요. 일부 옛사람들은 유럽울새의 붉은 가슴이 남성성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가슴의 붉은 색이 남근의 색이라고 생각한 거죠. 유럽의 전승 동요(nursery rhyme)에서 유럽울새는 콕 로빈(Cock Robin), 또는 붉은 가슴 로빈(Robin Redbreast)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그러고 보면 cock은 일반적으로 수컷 새를 의미하는 동시에 남근의 속어이기도 하죠.


채워지지 않는 로빈의 식욕을 사진으로 시각화해 보았습니다. / Terry Hughes on Flickr
채워지지 않는 로빈의 식욕을 사진으로 시각화해 보았습니다. / Terry Hughes on Flickr

굴뚝새를 사냥할 때 불렸던 'Hunting the Wren'이라는 노래에서 로빈, 즉 유럽울새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굴뚝새를 사냥하여 먹는데요. 굴뚝새가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인지 이 전승에서 로빈의 채워지지 않는 식욕은 성욕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심지어 로빈은 남근을, 그리고 두 명의 동료는 고환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자니 조금 프로이트가 된 기분이기 때문에 이 주제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 Plate printer Joseph M. Kornheim (1810-1896) published by Frederick Warne & Co.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 Plate printer Joseph M. Kornheim (1810-1896) published by Frederick Warne & Co.

유럽울새가 어떻게 남성을 상징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았으니, 다음으론 어떻게 유럽울새와 굴뚝새가 짝을 이루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설은 바로 두 새의 이름 궁합이 잘 맞았다는 것입니다. 꼭 남근과 관련짓지 않아도, 유럽울새의 외모에서 붉은 가슴은 굉장히 중요한 특성입니다. 유럽울새의 학명인 Erithacus rubecula에서 rubecula는 라틴어로 붉음을 의미하는 ruber에서 유래되었으며, 유럽울새의 영명인 robin 역시 같은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럽울새에게 Robin이란 이름을 지어준 고대인들은 Robin의 짝을 찾아주고 싶어졌죠. Robin과는 두운이 맞고, Hen과는 각운이 맞는 Wren에게 Jinny(이후 Jenny)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고대인들은 굴뚝새를 유럽울새의 배우자 삼았습니다.


어린 유럽울새의 영혼의 부모 중 최소 한 쪽은 굴뚝새가 아닐까 합니다. / Andreas Eichler on Wikimedia commons
어린 유럽울새의 영혼의 부모 중 최소 한 쪽은 굴뚝새가 아닐까 합니다. / Andreas Eichler on Wikimedia commons

두 번째로, 고대인들이 유럽울새와 굴뚝새가 서로 같은 종의 수컷과 암컷이라 여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린 유럽울새의 깃털은 갈색으로, 성체의 유럽울새보다는 오히려 굴뚝새와 유사한 빛깔인데요. 어쩌면 이것이 고대인들의 오해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설은 Welsh에서 유럽울새와 굴뚝새가 둘 다 저주받았기 때문에 서로 짝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유럽울새는 울타리 사이로 날아 지나갈 수 없는 저주를 받아 무조건 울타리 위로 날아 넘어가야 하고, 굴뚝새는 울타리 위로 날아 넘어갈 수 없는 저주를 받아 무조건 울타리 사이를 날아 지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낮게 날지 않는 유럽울새와 높이 날지 않는 굴뚝새의 습성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네요.


유럽울새와 굴뚝새와 체리 파이와 커런트 와인의 로맨틱한 한때입니다. / The courtship, marriage, and pic-nic dinner of Cock Robin & Jenny Wren : with the death and burial of poor Cock Robin : embellished with thirty neat coloured engravings, Anonymous, London : Printed and sold by Dean 유럽울새와 굴뚝새와 체리 파이와 커런트 와인의 로맨틱한 한때입니다. / The courtship, marriage, and pic-nic dinner of Cock Robin & Jenny Wren : with the death and burial of poor Cock Robin : embellished with thirty neat coloured engravings, Anonymous, London : Printed and sold by Dean 
유럽울새와 굴뚝새와 체리 파이와 커런트 와인의 로맨틱한 한때입니다. / The courtship, marriage, and pic-nic dinner of Cock Robin & Jenny Wren : with the death and burial of poor Cock Robin : embellished with thirty neat coloured engravings, Anonymous, London : Printed and sold by Dean 

많은 전승에서 유럽울새와 굴뚝새는 사랑에 빠진 커플로 나타나는데요. 유럽울새는 한없이 젠틀하고 스윗한 구혼자 또는 배우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노래하는 굴뚝새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유럽울새는, 새벽이 되면 굴뚝새의 창가에 찾아가 춤을 추고 세레나데를 부르며 달콤한 구애를 하죠. 정장을 차려입은 잘생긴 유럽울새가 젠틀하게 모자를 벗고 인사한 후, 자신과 결혼하여 매일 체리 파이(또는 체리 타르트)와 훌륭한 커런트 와인으로 식사하자고 정중하게 구혼하는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스포일러 : 결혼합니다.) 유럽울새와 굴뚝새의 결합은 모든 결혼한 커플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물론 현대인들은 유럽울새와 굴뚝새가 서로 짝을 짓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때로는 기분이 사실을 이기는 법이죠. 특히나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에 대해선 더더욱 말입니다.


'Babes in the Woods'의 표지와 삽화에서 유럽울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Illustrated by Randolph Caldecott, from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The Babes in the Wood, by Anonymous'Babes in the Woods'의 표지와 삽화에서 유럽울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Illustrated by Randolph Caldecott, from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The Babes in the Wood, by Anonymous
'Babes in the Woods'의 표지와 삽화에서 유럽울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Illustrated by Randolph Caldecott, from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The Babes in the Wood, by Anonymous

전승 속의 유럽울새는 굴뚝새에게 한없이 스윗한 배우자일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친절하며 젠틀한 새이기도 합니다. 'Babes in the Woods'라는 전승에서, 유럽울새는 숲에서 죽은 두 아이의 몸을 나뭇잎으로 덮어주는데요. 유럽울새는 죽은 자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새로, 무엇이든 살아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면 이끼나 나뭇잎으로 몸을 덮어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거나, 이마에 박힌 가시를 빼려 하다가 가슴이 피로 물들어 붉은 가슴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유럽울새는 친절한 새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친절함으로 유럽울새는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다양한 긍정적인 상징을 부여받았습니다. 신의 새이자 행운의 상징인 유럽울새를 죽이거나 둥지에서 알을 훔치는 것은 금기로 여겨졌으며, 이것을 어긴다면 저주받아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번영할 수 없었죠.


태양같이 둥글고 환합니다. / Mickaël Dia on Flickr
태양같이 둥글고 환합니다. / Mickaël Dia on Flickr

이 사랑스럽고 신성한 새는 태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태양을 상징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불과 연관되어, 유럽울새도 인간들에게 불을 전해준 새라는 전승을 가지고 있죠. 유럽울새의 불꽃 운반자 전승은 때로 굴뚝새의 것과 합쳐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처음 불을 가져온 것은 용감한 굴뚝새였지만, 깃털이 전부 그슬린 바람에 더 이상 임무를 다하지 못하게 되어 그 임무를 이어받은 새가 유럽울새인 것이지요. 상모솔새가 머리 위에 불꽃을 얹고 있다면, 유럽울새는 가슴에 새빨간 불을 담고 있습니다.


드루이드의 왕답게 위엄있는 모습입니다. / Mike Hazzledine on Flickr
드루이드의 왕답게 위엄있는 모습입니다. / Mike Hazzledine on Flickr

유럽울새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인 동시에 드루이드의 왕이기도 했는데요. 그들에게 12월 25일은 태양이 돌아오는 날로 여겨졌고, 이날 유럽울새는 태양이 다시 뜨게 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습니다. 바로 굴뚝새를 사냥하는 일이죠. 빛과 생명을 상징하는 유럽울새가 어둠과 죽음을 상징하는 굴뚝새를 죽임으로써 빛을 되찾고, 새로운 해가 떠오르게 한다고 드루이드들은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지난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죠. 이때의 굴뚝새는 유럽울새의 배우자가 아닌, 선왕 또는 아버지로 나타나는데요. 유럽울새는 자작나무 회초리를 사용해 굴뚝새를 죽이는데, 이때 흐른 굴뚝새의 피가 유럽울새의 가슴을 붉게 물들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12월 25일에 새로운 해를 떠오르게 하는 유럽울새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상징하여 연말 카드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새이기도 합니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 Terry Hughes on Flickr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 Terry Hughes on Flickr

오늘은 성탄절과 새해의 왕, 유럽울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걸로 동글따끈 삼부작도 끝이군요. 여러분이 새해 복을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오늘의 포스트는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Martha de Jong-Lantink on Flickr
Martha de Jong-Lantink on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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