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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새

Eurasian wren, Magus Avium

모두들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는지요. 오늘 12월 26일은 크리스마스의 다음 날이면서 굴뚝새의 날(Wren day)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보호받는 굴뚝새가 유일하게 사냥당하던 고대의 기념일이죠. 그런 뜻에서 오늘은 지난주의 상모솔새에 이어, 또 다른 동그랗고 작은 새인 굴뚝새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동그랗고 빵빵한 굴뚝새입니다. / Dibyendu Ash on Wikimedia commons

유럽에서 굴뚝새는 굉장히 많은 것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종교 및 문학적 상징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이고, 굴뚝새를 소재로 한 전승 역시 수도 없이 많지요. 일부 지역에서는 굴뚝새의 날과 같은 축일을 기념할 정도로 이 작은 새는 유럽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얘기하려면 올해 내로 이 포스트를 끝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굴뚝새의 생물학적 특징에서 유래된 상징들만을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혜로운 눈썹과 날카로운 눈의 굴뚝새입니다. / Tony Smith on Flickr

첫 번째로 살펴볼 굴뚝새의 특징은 바로 외모입니다. 굴뚝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수수하고 어두운 갈색 깃털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람들에게는 이 어두운 깃털의 새가 마치 칙칙한 로브를 입은 예언자처럼 보였나 봅니다. 고대인들은 굴뚝새의 날카로운 눈에서 미래를 읽는 능력을, 흰 눈썹에서는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노인을 보았죠.


이 작은 예언자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10cm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몸으로 쉬지 않고 뛰고 움직이며 노래하죠. 이 때문에 사람들은 굴뚝새에게 넘쳐흐르는 생명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연약한 몸에 초자연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은 굴뚝새를 정령 또는 요정의 일종으로도 여겨지게 하였죠. 굴뚝새는 끊임없이 움직일 뿐만 아니라 재빠르기까지 한데요. 인간들은 재빠른 움직임과 순간이동을 구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는 굴뚝새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세상 어딘가엔 정말 마법사 굴뚝새가 존재할 수도 있죠.


굴뚝새의 또 다른 특징으론 크고 아름다운 노래가 있습니다.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렁찬 노랫소리는 끊임없는 움직임과 함께 굴뚝새에게 깃든 초자연적인 생명력의 증거가 되죠. 다른 새들이 잘 울지 않는 해 질 녘과 가장 추운 겨울에도 노래하는 모습은 굴뚝새의 인내심과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굴뚝새는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노래하는데요. 그중에서도 하지와 동지의 노래는 각각 탄생과 죽음의 이미지와 결부됩니다.


당신을 홀리는 굴뚝새입니다. / Ron Knight on Flickr

위에서 얘기했듯이 굴뚝새는 갈색 깃털과 재빠른 움직임 때문에 보기 어려운 새입니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인간의 서식지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친숙한 새이기도 하지요. 친근하면서 보기 어려운 새라는 모순적인 특징과 커다란 울음소리는 굴뚝새에게 또 다른 마법적인 특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소리는 항상 들려오지만 모습은 볼 수 없는 굴뚝새는 마치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울음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굴뚝새는 노래로 인간을 홀리는 마녀나 요정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뱃사람이 많았던 아일랜드에서 굴뚝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남자를 유혹해 바다에 빠뜨리는 바다마녀라는 것을 들키고 말았죠.


땅의 굴뚝새입니다. / Werner Van Mele on Flickr

바로 위에서 굴뚝새와 바다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사실 굴뚝새는 바다보다는 땅과 더 연관이 많은 새입니다. 땅과 색이 비슷한 깃털과, 땅을 떠나 길게 비행하는 일이 드문 습성 때문에 굴뚝새는 새이면서도 기본적으로 땅의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모든 힘과 생명, 죽음이 땅에서 나온다고 믿었던 켈트 문화권에서 굴뚝새는 살아서 영계를 여행할 수 있는 존재였죠. 드루이드들은 인간의 영혼이 때로 굴뚝새의 형태를 취한다고 생각하였는데요. 이 때문에 굴뚝새는 영혼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 망자의 몸을 태운 후엔 굴뚝새를 관에 넣었다고 합니다.


숨겨진 공간 안에 어리고 배고픈 지혜와 지식들이 보입니다. / Armin Kübelbeck, CC-BY-SA, Wikimedia Commons

굴뚝새는 마치 동굴 같기도 하고 구멍 같기도 한 특이한 둥지를 짓는데요. 이 작은 구멍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은 굴뚝새가 영적인 비밀 공간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둥지 속의 굴뚝새는 그 자체로 숨겨져 있는 지혜와 비밀스러운 지식을 상징하였죠. 실제로 굴뚝새의 학명인 Troglodytes troglodytes은 동굴에 사는 자(cave-dweller)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τρωγλοδύτης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정교하고 특이한 둥지를 빠르게 지을 수 있는 능력은 굴뚝새의 성실하고 천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믿었죠.


꼬리를 한껏 세운 굴뚝새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굴뚝새의 꼬리는 굴뚝새의 상징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인간들은 특이하게 위로 젖혀진 짧은 꼬리를 보고 이 새에게서 성적인 이미지를 부여하였는데요. 성적 상징일 경우의 굴뚝새는 대개 제니 렌(Jenny Wren)이라는 여성형 인격으로 의인화됩니다. 제니 렌은 에로스를 상징하며, 달과 동일시되어 생산성을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제니 렌은 달의 여신, 결혼의 수호자 그리고 생명의 힘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깃털이 잔뜩 그슬린 새들의 왕입니다. / Dibyendu Ash on Wikimedia commons

수많은 마법적이며 초자연적인 특성 때문에 굴뚝새는 새들의 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가장 작은 새이면서도 새들의 왕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상모솔새와 굴뚝새는 많은 상징을 공유합니다. 지난주의 상모솔새 포스트에서 수리의 꼬리에 숨어있던 작은 새가 왕이 되었다는 전설을 얘기했는데요. 이 이야기에서 왕이 된 작은 새는 상모솔새일 때도, 굴뚝새일 때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었다는 불꽃 운반자(flame bearer) 역시 상모솔새와 굴뚝새가 공유하는 속성 중 하나인데요. 상모솔새가 머리에 불을 얹었다면, 굴뚝새는 불을 나르다가 깃털이 전부 그슬려 어두운 갈색의 깃털을 가지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상모솔새의 옛 이름은 금관 굴뚝새(gold-crested wren)였을 정도로, 이 두 새는 많은 이미지를 공유합니다.


사악한 굴뚝새가 사악하게 깃털을 잔뜩 부풀리고 있습니다. / janofonsagrada on Flickr

지금까진 주로 긍정적인 상징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만, 굴뚝새에겐 부정적인 상징 역시 부여되어 있습니다. 켈트 문화권에서 땅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영적 힘은 기독교 이후 하늘에 속하게 되었는데요. 이로 인해 땅과 지하세계의 존재로 여겨지던 굴뚝새의 지위도 전복되었죠. 드루이들에게 숭배받던 새라는 위치 때문에 이단의 이미지까지 덧씌워지며, 굴뚝새는 악마적 속성이라는 새로운 매력포인트를 하나 더 발견하게 됩니다. 굴뚝새의 사악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에는 성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양면적 태도 또한 영향을 미쳤죠. 굴뚝새의 사악한 측면을 보여주는 전승을 하나 말해보자면, 이 사악한 새는 자기보다 작은 모든 것을 죽입니다. 성인(聖人)의 애완 파리를 잡아먹어 저주받을 정도니까요. 굉장히 안전하네요.


이 사진에서도 귀여움과 근엄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 themadbirdlady on Flickr

굴뚝새는 외형과 행동의 대비가 굉장히 큰 새입니다. 강한 대비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 상상력은 굴뚝새에게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징을 붙였는데요. 그 결과 굴뚝새는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모순적인 새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반복되고 쌓이며, 이 새는 끝내 모순과 비정상 그 자체마저 상징하게 되고 말았죠.


생명력과 복슬함으로 가득 찬 겨울의 굴뚝새입니다. / nick ford on Flickr

오늘은 현명하고 비밀스러운 왕, 굴뚝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동글따끈 삼부작의 마지막 포스트에선 또 다른 작은 왕에 관해 소개해드릴 것을 예고하며, 이번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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