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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새

common tailorbird, 한 땀 두 땀

얼마 전의 한 포스트에서, 가을은 뜨개질과 바느질 같은 취미를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란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와 함께 멋진 둥지를 짜는 새를 소개했는데요. 둥지를 짜는 것은 뜨개질과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바느질과는 그닥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뜨개질과 바느질을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바느질하는 새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동그랗고 보드라워 보입니다. / Imran Shah on Flickr

오늘 소개할 새는 재봉새입니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걸쳐 서식하는, 몸길이 10~14cm 정도의 작은 새이죠. 몸의 깃털은 옆구리를 기준으로 등 쪽은 올리브색, 배 쪽은 크림색을 띠는데요. 채도가 낮은 올리브와 크림 위에 살짝 얹은 붉은 갈색의 정수리는 멋진 포인트가 되어 줍니다. 짧고 둥그런 날개와 하늘을 향해 곧추세운 긴 꽁지깃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작은 새인 굴뚝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재봉새 암수의 모습은 거의 동일하며, 번식기엔 수컷만 가운데 꽁지깃이 길어지는 것을 통해 둘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번식기의 수컷은 이렇게까지 길어집니다. / Raghunath Thirumalaisamy on Flickr

재봉새의 이름에 들어간 재봉(裁縫)은 바느질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재봉새의 영명인 tailorbird는 직역하면 '재봉사 새'가 되죠. 이름에 이렇게까지 대놓고 재봉이 들어갈 정도면, 재봉새들은 재봉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자신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재밌는 것이, 재봉새의 학명인 Orthotomus sutorius에서 sutorius는 제화공(製靴工) 또는 구두 수선공을 의미합니다. 재봉사와 제화공은 서로 다른 것을 만드는 직업이긴 하지만, 무언가를 꿰매고 엮어 잇는다는 공통점이 있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통해 재봉새도 꿰매고 엮는 것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차기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열매 같은 재봉새입니다. / Imran Shah on Flickr

재봉새가 꿰매는 것은 옷과 구두가 아닌 둥지입니다. 둥지 짓기의 시작은 둥지에 쓰기 좋은 잎을 고르는 것인데요. 둥지 자리를 먼저 정해 놓고 잎을 따가는 것이라면 잎사귀 자체의 품질만 고려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재봉새는 잎사귀가 나무에 달려있는 상태 그대로 둥지에 사용하기 때문에, 잎사귀의 퀄리티를 따지는 동시에 입지까지 꼼꼼히 살펴보아야겠죠. 재봉새는 보통 여러 개의 나뭇잎을 엮어서 둥지를 짓는데, 간혹 작은 잎 여러 개를 쓰는 대신 커다란 잎 하나를 동그랗게 말아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잎에서 작업하는 재봉새를 살펴보면 발로 잎을 잡고 매달려 있곤 하는데, 그래도 잎이 찢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재봉새가 얼마나 작고 가벼운지 다시 실감하곤 합니다.


괜찮은 장소의 괜찮은 잎을 골랐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시작해야 할 텐데요. 재봉새에겐 바늘이 없는 대신, 바늘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뾰족한 부리가 있습니다. 재봉새는 부리로 잎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고, 실 역할을 할 식물 섬유나 거미줄을 그 구멍에 끼워 넣은 후 잡아당겨 잎과 잎을 여미는데요. 이는 바느질이랑 똑같다 못해 인간이 이 새들을 보고 바느질을 배웠다고 설명하는게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잎 안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재봉새를 보면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하는데요. 위쪽으로 출입구를 내기 때문에 재봉새가 둥지에 갇힐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수컷이 둥지를 엮는 베짜기새와 달리, 재봉새는 암컷이 전담하여 둥지를 짓는데요. 위 영상에서도 둥지를 짓는 재봉새의 꼬리가 짧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비번식기의 수컷이란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지만, 보통 둥지를 짓는 것은 번식을 하기 위해서이니 암컷일 가능성이 아주 높겠죠.


위에서 보면 이런 보송보송한 둥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 Adityamadhav83 on Wikimedia commons

나뭇잎을 다 꿰맨 것으로 둥지가 완성되면 좋겠습니다만, 사실 본격적인 둥지 만들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재봉새는 이 나뭇잎 안에 풀잎 등을 사용하여 컵 모양의 둥지를 짓는데요. 둥지에는 새끼들의 쾌적함을 위해 부드러운 재료를 까는데, 목면이나 양목면의 보송보송한 섬유를 즐겨 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은 왜 굳이 둥지를 짓기 전에 나뭇잎을 주위에 두르는 것일까요. 새들이 둥지를 지으면서 뭔가 요상한 짓을 한다 싶으면 그건 대체로 천적을 예방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노출된 둥지보다는 나뭇잎으로 한 번 가린 둥지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런데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초록 나뭇잎 사이에 마른 갈색 나뭇잎이 섞여있다면 천적의 시선을 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재봉새는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는 상태의 나뭇잎을 사용함으로써 그런 상황을 예방할 수 있죠.


작게 봤을 땐 정말로 똑같은 자세의 새가 두 마리 있는 줄 알았습니다. / © subbu107

오늘은 바느질을 하는 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날이 서늘해지면서, 더위로 핑계로 미뤄 둔 바느질거리들과 다시 마주할 때가 슬슬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미 활동이라는 것이 좋으면서도 귀찮은 것이다 보니, 재미없는 부분들은 재봉새들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모니터 옆에서 바느질거리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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