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짤방

내가_감수할_위험은_계산했어.jpg

나 수학은 못하나 봐.......

우리는 살아가며 여러 만남을 겪게 됩니다. 그중에는 약속 며칠 전부터 설레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기대되는 만남도 있고, 어찌 피할 방도가 없어 끌려 나가듯 처리하고 와야만 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임의의 만남을 통해 나에게 어떤 득실이 있을지 계산해 보아야 할 때도 있죠. 그런 뜻에서 오늘은 다소 잘못된 계산으로, 당황스러운 만남을 겪은 어떤 새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기요...살려주세요......

오늘 소개할 것은 두 새가 대치하고 있는 짤입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짤에 붙은 문구 때문인지 왼쪽의 작은 새는 굉장히 당황스럽고, 후회로 가득찬 것처럼 보이는데요. 오른쪽의 새가 발에 꽉 움켜쥐고 있는 고기가 이 사태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의 체급 차이로 볼 때 오른쪽 새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왼쪽 새에게 충분한 위협이 될 텐데,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굳이 저렇게 몸을 앞으로 빼고 위압적으로 내려보고 있는 것일까요.


원본 짤을 크게 한 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짤이 처음 올라온 것은 2012년 9월, 웨스트코스트 매 훈련소(West Coast Falconry)의 페이스북으로 추정됩니다. 사진의 오른쪽 새는 매 훈련소의 북쪽에 위치한 어느 박물관에서 키우는 새라고 하는데요. 어느 날 이 새가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던 중 왼쪽의 새가 날아왔다고 합니다. 이 작은 새는 큰 새의 식사를 훔치려 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실패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공격을 받거나 다치지도 않았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길고 노란 다리가 매력적입니다. / © greglasley

먹이를 도둑맞을 뻔 한 오른쪽의 큰 새는 해리스매(Harris's hawk)입니다. 몸길이 46~59cm 정도인 중간 크기의 맹금인데, 맹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암컷이 수컷보다 더 크죠. 해리스매의 몸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인데, 어깨엔 붉은 갈색 깃털이 자라있습니다. 그리고 아래꼬리덮깃과 꽁지깃 끝은 하얀색을 띠죠. 다크초콜릿으로 기초를 잡은 후 밀크초콜릿을 조금 섞고, 엉덩이와 꽁지깃을 우유에 살짝 담그면 집에서도 쉽게 해리스매를 만들 수 있겠습니다.


얼핏 친목을 다지는 훈훈한 장면인 것 같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먹이를 두고 분쟁이 일어난 상황이라고 합니다. / © greglasley

해리스매는 사회성이 굉장히 좋은 새입니다. 왠지 매라고 하면 혼자서 먼 상공을 맴돌며, 고독하고 고고하게 살아갈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요. 이런 통념과는 반대로, 해리스매는 여럿이 무리 지어 사냥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혼자일 때보다 여럿이 사냥을 할 때 사냥의 성공률과 해리스매의 생존률이 올라가죠. 또한 해리스매의 새끼들은 다 컸다고 바로 독립하지 않고, 최대 3년까지 부모 곁에 머무르며 어린 동생들을 키우는 걸 돕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회성이 높고 똑똑한 새이기 때문에, 해리스매는 매사냥에 자주 쓰이는 새 중 하나이기도 하죠.


오늘의 짤에서 너무 가여워 보였기 때문에, 의젓하고 또렷해 보이는 사진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 Steve Valasek on Flickr

먹이를 훔치는 데 실패한 왼쪽의 작은 새는 아메리카황조롱이(American kestrel)입니다. 이름에 아메리카가 들어가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북미와 남미에 서식하며, 미국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맹금 중 하나이죠. 몸길이는 22~31cm 정도로 작은 편인데, 그것도 보통 작은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맹금이기까지 한데요. 아무리 작아도 맹금은 맹금이라고, 아메리카황조롱이도 암컷이 수컷보다 더 커다란 새입니다.


우리에게 날개가 없는 한 아래에서 새를 관찰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위의 두 엉덩이를 보고 암수를 구분해 보도록 합시다. / Daniel Arndt on Flickr

크기를 제외하면 암수의 겉모습이 같은 해리스매와 달리, 아메리카황조롱이는 육안으로 쉽게 암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황조롱이의 수컷은 날개 깃털이 청회색이며 검은 반점이 박혀 있는데요. 반면 암컷의 날개는 갈색이며 어두운 갈색 줄무늬가 있죠. 이를 통해 오늘의 짤의 아메리카황조롱이는 암컷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눈 밑의 검은 무늬는 해리스매 때문에 겁에 질려 흘린 눈물 자국이 아니라 깃털 무늬로, 아메리카황조롱이의 암수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오늘의 짤 속 아메리카황조롱이는 겉으로는 울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엄청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 2019 THE MINCING MOCKINGBIRD & THE FRANTIC MEERKAT

아메리카황조롱이의 회한에 가득찬 독백이 적혀있던 짤은 사실 The Mincing Mockingbird한 제품 이미지를 패러디한 것인데요. 원본의 모델이 된 새는 특유의 회색 등과 붉은 얼굴로 볼 때 유럽울새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이미지가 사용된 제품은 자석, 컵, 엽서 등 다양하며, 이 외에도 새가 그려진 다른 제품이 많으니 한번 구경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늘을 보는 아메리카황조롱이입니다.  / Laurel L. Russwurm on Flickr

오늘은 먹이를 훔치려는 작은 새와, 그것이 어이없는 큰 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의 새들이 어떤 새인지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작은 새가 어쩌다 저 큰 새의 먹이를 훔칠 용기를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요. 심지어 해리스매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린 것도 아니고, 대놓고 눈 앞으로 날아드는 것은 보통 배포가 아니라면 흉내조차 내지 못하겠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작은 아메리카황조롱이의 헤아릴 길 없는 마음을 생각하며,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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