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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Brown-eared bulbul, 삣삣 삐이요(연중무휴)

비록 낮은 여름, 밤은 겨울 같은 요즘입니다만 그래도 고개를 들어 가로수를 바라보면 주렁주렁 열린 감이 곱게 익어가는 가을입니다. 감의 계절이 찾아온 기념으로 오늘은 요즘 감나무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우리와 아주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새에 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생긴 직박구리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잘생긴 직박구리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오늘 포스트의 주인공은 바로 직박구리입니다. 한국 전역에 서식하는 직박구리는 서울시의 2000년 이후 생태조사에서, 서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새라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우리의 삶에 가까운 새이지요. 서울에선 까치나 참새보다도 자주 볼 수 있는 이 잘생긴 새는 매력적인 회색 깃털로 덮여있으며, 갈색 눈 뒤에는 눈 색과 잘 어울리는 갈색의 무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박구리의 영칭인 brown-eared bulbul은 이 갈색 반점에서 유래되었죠. 배에서 꼬리로 갈수록 점점 늘어나는 흰 반점도 직박구리의 은밀한 매력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사진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 Toshihiro Gamo on Flickr
사진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 Toshihiro Gamo on Flickr

인터넷의 바다를 떠돌다 보면 짖는 새, 소리를 지르는 새, 엄청 시끄러운 새의 정체를 알려달라는 질문글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그 범인은 높은 확률로 직박구리입니다. 직박구리는 무리생활을 하는 새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직박구리 떼일 확률이 높지요. 대부분의 새들이 번식기에만 노래를 부르는 것과 달리, 직박구리는 번식과 상관없이 일 년 내내 노래하는 새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이 습성의 장점은 일 년 내내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일 년 내내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까이에 나무가 있다면 집 안에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이 직박구리의 울음소리입니다만, 그래도 이번 글의 주제가 직박구리이니만큼 굳이 영상을 통해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를 한번 간접 체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직박구리의 일본 이름은 히요도리(鵯, ヒヨドリ)인데요. 이 이름은 직박구리가 히---요! 히-------요!!!!!!!!!! 하고 큰 소리로 우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름부터 직박구리의 장대한 목청을 암시하고 있죠.


배풍등의 열매입니다. / harum.koh on Flickr
배풍등의 열매입니다. / harum.koh on Flickr

직박구리의 울음소리에 관해서는 옛 문헌과 시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를 제호(提壺) 또는 제호로(提葫蘆)라 들었는데요. 뜻을 풀어보면 호리병을 손에 들다, 즉 술 한잔 하자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것이, 배풍등이라는 식물의 일본 이름은 히요도리죠고(鵯上戸, ヒヨドリジョウゴ)로 이름에 직박구리가 들어갑니다. 죠고(上戸)는 일반적으로 애주가 또는 술에 취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니, 직박구리가 인간에게 술을 권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군요. 물론 대부분의 시조는 술을 마시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직박구리의 노래를 술 권하는 소리로 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저도 지금부턴 옛시조의 저자들처럼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를 술 권하는 소리로 들어볼까 합니다.


복슬한 직박구리입니다. / Toshihiro Gamo on Flickr
복슬한 직박구리입니다. / Toshihiro Gamo on Flickr

옛사람들은 때때로 직박구리를 직죽(稷粥), 또는 호로록피죽새(葫蘆漉稷粥鳥)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춘궁기를 넘기는 사람들에게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는 피죽 피죽 우는 것으로, 때로는 호로록하고 피죽을 넘기는 소리로도 들렸나 봅니다. 또 다른 가설로는 직박구리가 피(稷)를 먹는 것을 좋아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있습니다. 직박구리의 일본 이름인 히요도리도, 피를 먹는 새라는 의미에서 히에도리(稗鳥, ヒエドリ)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 그 발음이 변해 히요도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하네요.


감을 먹고 있는 직박구리입니다. / coniferconifer on Flickr
감을 먹고 있는 직박구리입니다. / coniferconifer on Flickr

사실 직박구리는 피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잘 먹습니다. 오늘의 포스트를 시작하며 말했던 감부터 시작하여, 온갖 과일과 꽃, 곤충, 도마뱀까지 직박구리의 먹이가 됩니다. 주식이 과일과 곡식 같은 식물성 먹이인 탓에 직박구리는 농사를 망치는 주범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은데요. 직박구리는 곡식뿐만 아니라 논밭의 벌레와 해충 역시 잡아먹으니 사실상 농사에 기여하는 부분도 큽니다. 또 직박구리는 열매를 먹고 멀리 씨를 퍼뜨려 산림 보존에도 일조하는 새입니다. 자기 내키는 대로 잘 먹고 잘 싸고 다니는 것만으로 인간과 자연에 도움을 주는 삶이라니 부럽군요.


동백꽃과 노랑얼굴직박구리입니다. / coniferconifer on Flickr
동백꽃과 노랑얼굴직박구리입니다. / coniferconifer on Flickr

동박새만큼은 못하지만, 직박구리는 일부 조매화의 수분에도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꽃의 꿀을 먹는 새들의 사진을 보다 보면 얼굴에 온통 꽃가루를 묻히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참 귀엽습니다. 직박구리의 주식이 꿀인 것에는 또 다른 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는 것이죠. 식사를 위해 꽃을 자주 가까이하다 보니 직박구리는 꽃과 함께 찍힌 사진이 많고, 그게 참 예쁩니다. 새와 꽃의 케미를 살펴보다 보면 옛사람들이 괜히 꽃과 새를 같이 그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 뜻에서 잠시, 꽃과 직박구리 사진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Toshihiro Gamo on Flickr
Toshihiro Gamo on Flickr
Toshihiro Gamo on Flickr
Toshihiro Gamo on Flickr
Toshihiro Gamo on Flickr
Toshihiro Gamo on Flickr
Tetsushi Kimura on Flickr
Tetsushi Kimura on Flickr
Toshihiro Gamo on Flickr
Toshihiro Gamo on Flickr


다이나믹하게 오렌지를 섭취하고 있는 직박구리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다이나믹하게 오렌지를 섭취하고 있는 직박구리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오늘은 잘 먹고 잘 우는 잘생긴 새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직박구리는 어느 계절에라도 우리 가까이서 대단한 울음소리를 들려주는 텃새입니다. 근처에 나무가 있다면 잘생기고 시끄러운 새가 어디 없는지 오며 가며 한 번쯤 찾아보는 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보며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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