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새

빅토리안 크리스마스 카드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죽은 새 그림 여러 장과 박제 사진 한 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잔인한 묘사는 없습니다만 주의 바랍니다.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습니다. 이는 곧 다른 사람과 선물을 주고받거나, 또는 일 년 동안 수고한 자신을 위한 거한 선물을 준비할 때가 찾아왔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선물 못지않게 마음을 채워주는 것으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가 있겠습니다. 물론 그 카드에 선물까지 동봉되어 있다면 더욱더 좋겠죠. 그런 뜻에서 오늘의 포스트에서는 새가 그려져 있는, 조금 특이한 크리스마스 카드에 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마스의 평화가 당신의 마음을 겨울로부터 지켜주기를...

오늘 소개할 것은 죽은 새가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들입니다. 죽은 새라는 비극적인 이미지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라는 문구가 대비되어 굉장히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죠. 죽은 새가 그려진 카드는 19세기, 그중에서도 특히나 빅토리아 시대인 1880년대의 영국에서 유행하였는데요. 이와 같은 카드가 유행하였던 명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설득력 있는 가설을 몇 가지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나뭇잎을 덮어주는 유럽울새의 모습입니다. / Illustrated by Randolph Caldecott, from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The Babes in the Wood, by Anonymous누가 울새를 죽였습니다. / The courtship, marriage, and pic-nic dinner of Cock Robin & Jenny Wren : with the death and burial of poor Cock Robin : embellished with thirty neat coloured engravings, Anonymous, London : Printed and sold by Dean and Munday, Threadneedle-street

첫 번째 가설은 크리스마스의 불우한 이들에게 동정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로 이와 같은 카드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카드에 그려진 다양한 죽은 새들 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유럽울새(European robin)인데요. 이는 영국의 구전 동화 '숲속의 아이들(Babes in the Woods)'과 전래 동요 '누가 울새를 죽였나(Who Killed Cock Robin)'가 그 모티브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숲속의 아이들'은 부모가 사망한 후 유산을 노리는 삼촌 때문에 숲속을 헤매다 죽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 이야기에서 유럽울새는 나뭇잎을 물어와 죽은 아이들의 몸을 덮어줍니다. 그리고 '누가 울새를 죽였나'는 살해당한 울새의 장례를 치르는 내용이죠.


두 마리인 줄 알았더니 세 마리였습니다.

유럽울새는 크리스마스 카드로 그려지기 전부터 크리스마스와 관련이 깊은 새였습니다. 기독교적으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위해 노래하다 가슴이 붉게 물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지며, 켈트 문화적으로는 12월에 새로운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새로 여겨졌죠. 그리고 여기에 얼어 죽은 가여운 아이들과 장례식의 이미지 등이 합쳐지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죽은 유럽울새 카드를 주고받게 되었다는 것이 첫 번째 가설입니다.


이 굴뚝새 사체는 박물관에 기증된 후 박제되어 20년이 넘게 굴뚝새의 날에 수고하고 있다고 합니다. / Culture Vannin on Flickr

두 번째 가설은 죽은 새의 이미지가 아일랜드의 '굴뚝새의 날(Wren day)'과 관련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새인 굴뚝새(Eurasian wren)를 1년 중 유일하게 사냥할 수 있는 날이 바로 굴뚝새의 날인데요. 12월 26일이면 'wrenboy'라고 불리는 소년들이 장대에 굴뚝새를 매달고, 노래하고 행진하며 학교나 자선 단체의 기부금을 걷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은 현대까지도 일부 지역에 남아 있으며, 20세기 무렵부터는 굴뚝새를 사냥하는 대신 모형 또는 박제를 사용한다고 하네요.


상모솔새도 지나간 해를 상징하는 작은 새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하고많은 새 중에서도 굳이 굴뚝새를 사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관해선 다양한 설이 있지만, 크리스마스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것만을 알아보겠습니다. 다른 새들이 잘 울지 않는 해 질 녘과 가장 추운 겨울에도 노래하는 습성 때문에, 켈트 문화에서 굴뚝새는 어둠과 죽음을 상징했는데요. 반면 유럽울새는 빛과 생명을 상징하였고, 유럽울새가 굴뚝새를 죽임으로써 새로운 해가 떠오르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즉 굴뚝새를 사냥하는 의식은 지나간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죠.


살아있는 새가 그려진 빅토리아 시대의 크리스마스 카드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드입니다.

오늘은 19세기의 죽은 새 카드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비록 비주얼은 조금 흉흉하지만, 당시 이 카드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상대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기원한 것만은 분명할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의 이미지가 친숙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의 감성으로선 죽은 새보다는 살아있는 새가 그려진 카드를 받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죽은 새가 그려진 카드였으니, 이 밑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다른 죽은 새 카드들 더 첨부하며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 부제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는 자우림의 '새'의 가사를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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