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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까마귀 두 번째

어느새 12월이 되고 새해가 다가오며, 슬슬 2019년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습관적으로 쓴 2017을 2018로 고치는 것은 꽤 쉬운 일이었지만, 2018을 2019로 고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하지만 2019년에 익숙해지기 전에 거쳐야 할 중요한 일도 있습니다. 그건 바로 새해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불을 두르고 따뜻하게 데굴거리는 것이지요. 그런 뜻에서 오늘은 데굴데굴 구르는 포스트를 작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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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것은 눈 쌓인 차 위를 데굴거리는 까마귀가 주인공인 움짤입니다. 이 짤의 까마귀를 자세히 보면 깃털과 부리가 조금 희끗희끗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눈이 묻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눈이 좋아서 하얘져 버린 것인지는 앞으로 차차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짤의 원본은 2011년 1월 유튜브에 게시된 위의 영상입니다. 러시아에서 촬영된 듯한 이 영상에는 까마귀 여러 마리가 등장하며, 모두들 눈을 즐기고 있죠. 그중에서도 특히 한 까마귀는 놀던 곳의 눈이 전부 흘러내려 버리자 다른 차로 옮겨가면서까지 미끄럼을 타고 데굴데굴 구르며 눈을 만끽하고 있는데요. 자세히 보면 눈뭉치도 하나 꼭 쥐어서 부리에 물었다 발에 쥐었다 하는 것을 보니 정말로 눈이 좋은가 봅니다.


뿔 없는 뿔까마귀입니다. / Eugene Archer on Flickr

오늘 소개할 까마귀는 뿔까마귀입니다. 그런데 눈(雪x 目o) 씻고 찾아봐도 이 새의 머리에는 뿔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데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뿔까마귀가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불리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뿔까마귀의 영명은 hooded crow로, 직역을 해 보면 후드를 쓴 까마귀인데요. hooded를 horned 같은 것으로 잘못 보고 오역하였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몹시 낮아 보입니다.


보송보송한 기모 후드를 입었지만 뿔은 없는 뿔까마귀입니다. / hedera.baltica on Flickr

뿔까마귀의 중국어 이름은 꾸안샤오쮀이우야(冠小嘴烏鴉, guànxiǎozuǐwūyā)로, 이를 직역하면 관을 쓴 작은 부리 까마귀가 됩니다. 뿔까마귀는 유럽과 서아시아 일부 지역에 서식하며, 중국에는 자생하지 않는 새인데요. 그렇다면 뿔까마귀의 중국 명칭은 다른 언어 명칭을 번역하여 붙여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아마도 영어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후드(hood)를 관(冠)으로 표현하게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관(冠)이 볏이나 머리깃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여 뿔이라 표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는데요.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의 단계이기 때문에, 혹시 이에 관해 더 잘 아시는 분이나 뿔이 달린 뿔까마귀를 보신 분 계시다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부리를 보아하니 이 친구도 눈을 꽤나 파딩긴 것 같습니다. / Jevgēnijs Šlihto on Flickr

후드를 쓴 까마귀라는 이름처럼, 뿔까마귀는 머리와 날개, 꼬리를 제외하면 온몸이 회색 깃털로 덮여있습니다. 즉 오늘의 영상에서 부리가 흰 것은 눈이 묻었기 때문이었고, 깃털이 흰 것은 타고났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 정도로 회색 비율이 높으면 이 친구를 까마귀보다는 차라리 회새귀라고 부르고 싶은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는데요. 그런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뿔까마귀의 아일랜드 명칭인 Caróg liath와 러시아 명칭인 Серая ворона, 덴마크 명칭 Gråkrage는 전부 회색 까마귀란 뜻입니다.


왼쪽은 까마귀 까마귀, 그리고 오른쪽은 까마귀 까마귀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왼쪽은 뿔까마귀, 오른쪽은 송장까마귀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 Lars Petersson, IBC1324708. Accessible at hbw.com/ibc/1324708.

뿔까마귀의 이름의 난해함에 관해 알아보았으니, 이어서 알아볼 것은 학명의 난해함입니다. 뿔까마귀의 학명은 Corvus cornix인데요. Corvus와 cornix가 라틴어로 까마귀라는 뜻이기 때문에 직역하면 까마귀 까마귀가 되죠. 그리고 이 친구들과 아주 많이 닮은 송장까마귀(carrion crow)의 학명은 Corvus corone인데, corone는 까마귀를 뜻하는 희랍어 단어 κορώνη가 유래이기 때문에 까마귀 까마귀가 됩니다. 뿔까마귀와 송장까마귀는 생김새와 서식지가 비슷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뿔까마귀가 송장까마귀의 아종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는데요. 그리고 그때의 뿔까마귀의 학명은 Corvus corone cornix, 즉 까마귀 까마귀 까마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뿔까마귀는 눈이 녹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 Donald Hobern on Flickr

오늘은 눈과 구르기와 눈에서 구르기를 좋아하는 뿔까마귀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뿔까마귀의 이름과 관련된 화제들만 다뤄보았는데요. 그건 다음 주에 소개할 까마귀도 뿔까마귀이기 때문입니다. 뿔까마귀의 다른 매력들에 관해선 다음 주에 마저 알아보기로 하며,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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