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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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까마귀

지역에 따라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겨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리 없이 우리 곁에 확실히 다가왔습니다. 일기 예보로부터 눈을 돌리며 아무리 부정해 봐도, 이는 이미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부터 3주 동안은 눈을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새들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것은 두 마리의 검은 새가 눈 속에 몸을 반쯤 파묻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움짤입니다. 두 새의 부리가 맞닿은 후 오른쪽의 새가 옆으로 발라당 넘어지는 모습 때문에, 키스가 너무 달콤해서 쓰러졌다는 로맨틱한 설명으로도 알려져 있죠.


오늘 짤의 원본은 2013년 3월 에스토니아에서 촬영된 위 영상으로, 영상의 40초쯤부터 짤에 사용된 장면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 영상은 오늘의 짤의 근본적인 출처는 아닌데요. 이 영상은 Looduskalender에서 2013년 방송한 버드캠의 일부를 녹화해서 업로드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 버드캠의 제목은 'Eagles Winter Feeding Ground'로, 까마귀캠이 아닌 수리캠이었는데요. 중간중간 보이는 흰꼬리수리의 모습을 통해, 이 버드캠의 본래 아이덴티티를 조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크고 까만 큰까마귀의 모습입니다. / ⓒ Don Loarie

오늘의 짤의 검은 새들은 큰까마귀(common raven)입니다. '큰'이 들어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큰까마귀는 까마귀과에 속한 새 중 가장 큰 새인데요. 한국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까마귀인 큰부리까마귀(large-billed crow)의 몸길이가 57cm 정도고, 큰까마귀의 몸길이는 63cm 정도이니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정말 큰 까마귀임을 알 수 있죠. 큰까마귀의 학명은 Corvus corax인데요. corvus와 corax는 각각 라틴어와 희랍어로 까마귀를 뜻하는 단어 corvus와 κοραξ가 유래이기 때문에, 이를 직역하면 까마귀 까마귀가 됩니다. 큰까마귀는 까마귀과의 새 중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새이기 때문인지, 학명부터 자신이 까마귀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군요.


눈을 너무 좋아하다 못해 하얗게 변한 큰까마귀는 아니고 단지 원래 깃털이 하얀 큰까마귀입니다. / ⓒ jpwilliams

그렇다면 오늘의 짤의 큰까마귀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눈 속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것일까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은 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까마귀과의 새들은 굉장히 지능이 높으며, 놀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동물이 자신의 포식이나 번식을 위해 본능적으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동물의 놀이는 비생산적이다 못해 비효율적인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놀이를 통해 까마귀들은 동료들과의 유대감이나 협동심을 기를 수도 있고, 아주아주 재미있을 수도 있죠. 집단생활과 놀이는 지능이 높은 생물의 대표적인 특성들로 여겨지곤 하는데요. 저도 노는 게 제일 좋으니 똑똑할 것이라는 비논리적인 가설을 조금 세워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 / Robb Hannawacker, Public Domain

이어서 이 큰까마귀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정말로 키스를 한 것이 확실한지를 알아보겠습니다. 큰까마귀들은 한 번 짝을 지은 상대와 평생 함께하는 편인데요. 그렇다면 단 둘이 다정하게 놀고 있는 이 두 큰까마귀는 커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큰까마귀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회적인 새이기 때문에, 친구나 가족과도 충분히 이와 같이 돈독하고 다정한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있죠. 또한 부리를 맞부딪힌 행위도 애정 섞인 부리맞춤이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서로의 부리를 먼저 먹으면 이기는 게임이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즉 이 두 까마귀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영상의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까아악 까악 까아아아아악 까악 까아아아아악 까아악 까악까악 까아아아아아아아악 까아악 까악 / ⓒ Kent McFarland

오늘은 눈이 와서 즐거운 두 마리의 큰까마귀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흰 눈과 검은 까마귀의 선명한 대비는 누구에게라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음 포스트와 그 다음 포스트까지, 앞으로 두 포스트 더 눈과 까마귀에 관해 얘기할 것을 다시 한 번 예고하며,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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