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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조

Rock ptarmigan, 보송보송 눈뭉치

여름이 지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가을이 얼굴을 살짝 보여주는가 싶더니 겨울이 훅 들어와 버린 11월입니다. 아예 춥기만 하면 모르겠는데 일교차도 심해서 자칫하다간 크게 앓기 딱 좋은 시기이기도 하죠. 패딩을 꺼내도 이상하지 않은 계절이 찾아왔으니, 오늘은 천연 패딩을 준비하는 어느 따끈한 새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천둥을 다루진 못하니 썬더버드까진 못 되더라도 떤더버드나 떠더던더버드는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봅니다. / Daisuke Tashiro on Flickr

오늘 소개할 새는 뇌조입니다. 한자로는 雷鳥라 쓰기 때문에 굉장히 강해보이지만, 놀랍게도 북미 원주민 전설의 거대 새인 천둥새(thunderbird)와는 전혀 관련없는 새이죠. 두 새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천둥을 다룰 수 있느냐의 여부로, 뇌조는 이름과 달리 천둥을 다루는 능력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두 새는 겉모습도 서로 아주 다른데요. 천둥새는 거대한 맹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만, 뇌조는 몸길이 37cm 정도로 천둥새에 비하면 한참 작은 새입니다. 뇌조에게 이와 같은 거창한 이름이 붙은 것은 일명인 라이쵸(雷鳥, ライチョウ)가 유래가 아닐까 하는데요. 뇌조는 과거 일본에서 라이노토리(らいの鳥, ライノトリ)라고 불리다가, 에도시대부터 라이쵸(雷鳥)라고 불리며 화재나 천둥을 피하게 해준다는 신앙에 결부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라이노토리(らいの鳥)의 라이(らい)가 천둥(雷)을 뜻했는지, 또한 그렇지 않다면 왜 이후에 雷라는 한자가 붙게 되었는지는 일본 쪽에서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주위에 녹아들다 못해 녹아버린 여름 뇌조와 양감을 유지하고 있는 겨울 뇌조입니다. / GRID Arendal, american_male on Flickr주위에 녹아들다 못해 녹아버린 여름 뇌조와 양감을 유지하고 있는 겨울 뇌조입니다. / GRID Arendal, american_male on Flickr
왼쪽은 겨울깃에서 여름깃으로 가고 있는 5월의 얼룩덜룩이, 오른쪽은 여름깃에서 겨울깃으로 가고 있는 9월의 얼룩덜룩이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왼쪽은 겨울깃에서 여름깃으로 가고 있는 5월의 얼룩덜룩이, 오른쪽은 여름깃에서 겨울깃으로 가고 있는 9월의 얼룩덜룩이입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뇌조의 가장 큰 특징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극적인 깃갈이를 한다는 것인데요. 이와 같은 깃갈이의 가장 큰 목적은 의태입니다. 고산 지대 및 극지방의 평지에 서식하는 뇌조는 여름이면 갈색 깃털로 바위 사이에 숨고, 겨울이면 흰 깃털로 눈 속에 몸을 숨기며 주위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죠. 이와 같은 깃갈이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게는 수개월에 걸쳐서도 진행되는데요. 이 때문에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어중간한 환절기의 날씨처럼 여름깃도 겨울깃도 아닌 얼룩덜룩한 어중간한 깃털의 뇌조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좌)왼쪽부터 5월 말의 수컷과 암컷 뇌조입니다. (우)흰 깃털에 흙을 묻힌 수컷 뇌조입니다. / Jan Frode Haugseth on Wikimedia commons, Mick Thompson on Flickr(좌)왼쪽부터 5월 말의 수컷과 암컷 뇌조입니다. (우)흰 깃털에 흙을 묻힌 수컷 뇌조입니다. / Jan Frode Haugseth on Wikimedia commons, Mick Thompson on Flickr

겨울 동안 희고 빵빵하던 뇌조들은 이른 봄부터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번식기가 시작될 무렵인 5월 말~6월 초의 암컷은 거의 갈색으로 변하여 눈에 띄지 않는 반면, 수컷은 아직 하얀 깃털이 많이 남아 있어 먼 거리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요. 이는 천적의 눈에 띄기 쉬우면서도 살아남은 자신의 생존 능력을 과시하려는 수컷의 구애 전략과 관련된 것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2001년에는 암컷과의 교미에 성공한 수컷들이 흰 깃털에 흙을 묻혀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듯한 행동이 관찰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번식기가 끝나는 7~8월이면 뇌조 수컷도 깃털이 완전히 갈색으로 변하며, 육안으로는 암수의 구분이 어려워집니다.


보송보송한 다리를 자랑하는 뇌조와 보송보송한 다리를 활용하는 뇌조입니다. / Alpsdake, Boaworm on Flickr보송보송한 다리를 자랑하는 뇌조와 보송보송한 다리를 활용하는 뇌조입니다. / Alpsdake, Boaworm on Flickr

10월 무렵이면 뇌조는 갈색 깃털이 빠지고 흰 깃털이 자라기 시작하는데요. 12월에 접어들 때쯤이면 뇌조는 검은 꽁지깃을 제외한 전신의 깃털이 흰색으로 변하며 겨울의 눈요정이 될 준비를 마칩니다. 이때의 뇌조는 깃털 사이사이에 공기를 넣어 빵실빵실하게 부풀리는데, 이는 귀여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열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죠. 또한 겨울 뇌조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잘 날지 않고 주로 걸어 다닌다고 하는데, 깃털이 난 보송보송한 다리는 발이 시려워 (꽁!) 하는 일 없이 눈 속을 걸어 다니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조뿐만 아니라 아직 어린 뇌조도 큰 발에 솜털이 보송보송 자라 있는 것이 아주 귀엽습니다. / Alpsdake on Wikimedia commons

오늘은 계절 따라 깃을 갈아입는 새 뇌조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계절마다 옷장을 뒤집다 보면 가끔 사람도 굳이 옷을 입을 필요 없이 털이 자라면 좋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는데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간수도 제대로 못하는 지금을 생각해보면 그냥 옷을 입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지금쯤이면 뇌조들도 겨울깃갈이를 하며 빵실귀염보송따끈복슬해지고 있을 텐데요. 비록 뇌조만큼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꽤 따뜻하고 빵빵해질 수 있는 롱패딩을 꺼내러 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겨울 따뜻하게들 보내시게. / Per Harald Olsen (Perhols) on Wikimedia commons



참고문헌

Montgomerie, Robert, Bruce Lyon, and Karen Holder. "Dirty ptarmigan: behavioral modification of conspicuous male plumage." Behavioral Ecology 12.4 (2001): 429-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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