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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뿔닭

Helmeted guineafowl, 뿔 있는 뿔닭

문득 지금까지의 포스트를 찬찬히 살펴보니,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약속이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중 최초의 약속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인 2016년 3월, 트라고판에 관한 포스트에서 단단한 뿔을 가진 새에 관한 포스트를 작성하겠다고 한 것일 텐데요. 그 후 화식조에 관한 포스트는 금방 작성했었습니다만 뿔닭이 아직이더군요. 물론 포스트 작성에 기한을 정해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얘기 나온 약속은 얼른얼른 이행하는 것이 좋으니 오늘은 뿔닭에 관한 포스트를 작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머리의 두 돌기 중 어떤 것이 부리이고 어떤 것이 뿔일까요. / Derek Keats on Flickr

오늘 소개할 것은 뿔닭과(또는 호로새과, Numididae)에 속하는 새 중 가장 잘 알려진 새인 투구뿔닭입니다. 몸길이 약 55cm의 이 커다란 새는 이름에 걸맞게 단단하고 투구 같은 돌기가 있죠. 사실 이건 비밀인데, 뿔닭과에 속하는 새 중에 머리에 뿔이 있는 것은 투구뿔닭 뿐인데요. 뿔닭과의 새 중에서 투구뿔닭이 가장 유명했기 때문에 뿔 없는 뿔닭과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투구뿔닭의 영명은 helmeted guineafowl로, guinea가 들어가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기니 출신의 새인데요. 원래 기니를 비롯한 사하라 남부에 서식하던 투구뿔닭은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 가금으로 키워지고 있죠.


이게 제 다립니다. / Bernard DUPONT on Flickr

투구뿔닭은 튼튼하고 건장한 다리와 강한 발톱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는 투구뿔닭이 날기보다는 걷기를 선호하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투구뿔닭은 하루에 10km 이상을 걸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걷는 것을 선호한다기보다는 아주 잘 걷는 새라고 표현하는 편이 낫겠군요. 투구뿔닭의 튼튼한 발은 먹이를 찾아 땅을 헤집을 때, 또는 수컷끼리의 싸움이 벌어졌을 때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투구뿔닭의 수컷들은 서로에게 굉장히 공격적이라 싸움이 자주 발생하며 피를 보거나 상처가 남는 일도 흔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처럼 싸우는 일이 많으면서 다리 뒤의 뾰족한 돌기가 없는 것도 투구뿔닭의 특징 중 하나이죠. 이 돌기는 일반적으로 며느리발톱이라 불립니다만, 제가 며느리발톱이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대체어를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투구뿔닭에겐 뿔이 없습니다. / Brian Gratwicke on Flickr

투구뿔닭은 호로새 또는 호로호로새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이는 투구뿔닭의 일명인 호로호로쵸(ほろほろ鳥, ホロホロチョウ)에서 온 것이며, 울음소리가 '호로호로'하고 들린다는 것이 그 유래라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이 새의 이름을 보고 호로새끼 같은 드립을 칠 생각인 분이 계시다면 그만두시기를 바랍니다. 비하적 의미의 유래를 가지고 있다거나 비속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정말로 재미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설마 몰라서 안 하는 것이겠습니까.


∴∵∴∵∴∵ / acornjfl on Flickr

투구뿔닭을 비롯한 뿔닭과의 새들은 색시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뿔닭은 결혼 적령기의 암컷만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깃털 무늬가 예쁘다고 이와 같은 명칭이 생겼다는 얘기도 있긴 한데 정확한 유래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투구뿔닭의 깃털엔 동그란 무늬들이 있는데, 이 무늬 때문에 구슬닭이나 주계(珠鷄)라고 불리기도 한다는군요. 혹시나 또 다른 허튼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실까 하여 말씀드리자면 웬만하면 섹시 닭 같은 드립도 부디 지양해주시길 바랍니다.


왼쪽부터 흰가슴뿔닭과 칠면조입니다. / ian, IBC1039249. Accessible at hbw.com/ibc/1039249., Robert Engberg on Flickr왼쪽부터 흰가슴뿔닭과 칠면조입니다. / ian, IBC1039249. Accessible at hbw.com/ibc/1039249., Robert Engberg on Flickr

투구뿔닭의 학명은 Numida meleagris인데요. 그리스 신화에서 멜레아그로스의 자매들(Μελεαγρίδες)이 멜레아그로스의 죽음을 애도하다가 뿔닭으로 변해버렸다는 얘기가 그 유래라고 합니다. 학명에 meleagris가 들어가는 새로는 투구뿔닭 외에도 흰가슴뿔닭(Agelastes meleagrides)과 칠면조(Meleagris gallopavo)가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자매들이 이 중 어떤 새로 변했을 것인가, 또 뿔닭 사이에 뜬금없이 칠면조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두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죠. 예전의 칠면조 포스트에서도 얘기했듯이, 유럽인들이 칠면조를 뿔닭의 일종으로 여겼던 것이 후자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전자의 의문에 대해선 고대 그리스, 칼리돈에서 현장을 직접 목격하신 분의 제보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깃털, 물고기, 꽃입니다. / Stavros Markopoulos, Dr. Nasser Halaweh, Vix on Flickr왼쪽부터 깃털, 물고기, 꽃입니다. / Stavros Markopoulos, Dr. Nasser Halaweh, Vix on Flickr왼쪽부터 깃털, 물고기, 꽃입니다. / Stavros Markopoulos, Dr. Nasser Halaweh, Vix on Flickr

학명에 meleagris가 들어가는 또 다른 동물인 Arothron meleagris는 노란 개체와 흰 점이 있는 검은 개체가 있는데, 흰 점이 있는 개체는 특히 뿔닭복어(guineafowl puffer)라고 불립니다. 또한 Fritillaria meleagris라는 식물은 점무늬가 있으며 암뿔닭꽃(guinea-hen flower)이라고도 불리는데요. 굳이 다시 정리를 해 보자면 이 둘의 공통점은 자잘한 점무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무늬가 뿔닭의 깃털을 닮았다고 하여, 이 둘의 학명과 이름엔 뿔닭이 들어갔다고 하네요.


<' / Bernard DUPONT on Flickr

오늘은 뿔이 있는 투구뿔닭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뿔닭과에는 투구뿔닭 외에도 재미있는 새들이 많은데요. 언젠가 뿔이 없는 뿔닭에 관해서도 소개하겠다고 하고 보니 약속이 다시 하나 늘었군요. 또 다른 약속이 더 생기기 전에 오늘의 포스트 얼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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