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폴더

쇠재두루미

Demoiselle crane, 히말라야를 넘어서

오늘은 6월 18일 단오입니다. 단오는 수릿날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수리에 관한 포스트를 써볼까도 했습니다만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것 같아 단념하였습니다. 그 대신 오늘은, 단오 하면 생각나는 강릉관노가면극의 등장인물인 양반광대의 수염을 닮은 깃털을 가진 새에 관한 포스트라는 더한 무리수를 둬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염과 목털과 가슴털의 경계에 있는 검은 깃털이 멋집니다. / C Watts on Flickr

오늘 소개할 새는 쇠재두루미입니다. 두 발로 섰을 때의 키가 75cm 정도인 쇠재두루미는 굉장히 큰 새입니다만, 사실 두루미과 안에선 가장 작은 새 중 하나입니다. 쇠재두루미의 쇠는 이름에 쇠가 들어가는 다른 새와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다는 의미이지요. 쇠재두루미의 영명인 demoiselle crane은 직역해보면 소녀 또는 여성 두루미가 되는데요.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쇠재두루미는 암컷만이 존재한다는 것일까요. 물론 쇠재두루미는 암수가 모두 존재할뿐더러, 설령 암컷만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정말 안이한 작명이 아니라 할 수 없겠습니다.


자신의 이름에 의구심을 품는 쇠재두루미입니다. / Cloudtain the Snow Leopard on Flickr

북인도에서 쇠재두루미는 Koonj (कूंज)라고 불리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두루미를 뜻하는 kraunch에서 유래된 것으로 딱히 소녀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북인도의 문학에서 쇠재두루미는 아름다운 여인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고 하니, 이것이 쇠재두루미에게 여성을 뜻하는 영명이 붙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저는 새와 관련된 상징과 은유 등을 정말로 좋아합니다만, 생물종의 이름만은 부디 특성을 잘 살려서 붙였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는 것을 여기 살짝 밝혀봅니다.


이 사진엔 새가 총 두 마리 있습니다. / Tim Ellis on Flickr

두루미과의 새들은 대부분 번식지와 월동지가 달라서 먼 거리를 이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의 작은 두루미인 쇠재두루미 역시 다른 두루미와 마찬가지로 먼 이주를 하는 새입니다. 여름철 번식을 무사히 마친 쇠재두루미는 8월 말부터 9월 사이에 수백 마리에 이르는 무리를 지어서 월동지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데요. 쇠재두루미는 두루미과 뿐만 아니라 모든 새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고단하고 힘든 이주를 하는 새 중 하나입니다.


쇠재두루미의 천적인 검수리(golden eagle)의 사진입니다. 수릿날 수리에 관한 얘기를 이런 식으로라도 기어이 하게 되었습니다. / David Illig on Flickr

쇠재두루미의 이주 루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유라시아 서부 지역에서 번식하는 쇠재두루미는 아프리카에서, 몽골과 중국에서 번식하는 쇠재두루미는 인도에서 겨울을 보냅니다. 유라시아 서부에서 아프리카까지도 물론 길고 긴 여정이긴 합니다만, 몽골에서 인도로 가는 친구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야 합니다. 세계의 지붕이라고도 불리는 히말라야를 넘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며, 이 과정에서 피로와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쇠재두루미도 많다고 합니다. 쇠재두루미의 천적인 검수리 역시 아주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지요.


많습니다. / Bernard Sallier on Flickr

인도에 도착한 쇠재두루미들은 수만 마리의 거대한 무리를 지어 겨울을 보내며, 이렇게 잔뜩 모인 쇠재두루미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렇게 겨울을 나는 쇠재두루미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인도 라자스탄주의 키찬(Khichan, Rajasthan) 지역이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키찬의 주민들은 쇠재두루미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하였는데요. 처음에는 수십 마리 정도밖에 찾아오지 않았지만, 어느새 소문이 났는지 지금은 수천 마리가 넘는 쇠재두루미가 키찬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쇠재두루미는 8월부터 3월까지 이 지역에 머무르는데, 9월에서 2월 사이에 가장 많은 쇠재두루미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인도에 방문하실 예정이 있다면 참고하시는 게 어떨까요.


자신이 멋진 것을 잘 아는 듯한 쇠재두루미입니다. / Jean-Pierre Bluteau on Flickr

오늘은 검고 긴 깃털을 가진 작은 두루미 쇠재두루미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단오 얘기로 글을 시작한 것 치곤 역시 너무 무리수였나 싶은 생각이 여전히 남아있긴 합니다만, 쇠재두루미가 멋지니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음엔 또 어떤 이상한 새에 관한 포스트로 돌아오게 될지 고민하며, 오늘의 포스트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 사진에 숨어있던 앙증맞은 발의 주인은 생후 4주의 아가이며, 이렇게 생겼습니다. / Tim Ellis on Flickr

새 글을 씁니다

새을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태그
날개와 부리
날개와 부리
구독자 1,146

2개의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로운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