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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쇠찌르레기

Daurian starling, 이 몸이 새라면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선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아마도 당일엔 종일 방송과 속보를 챙겨 보느라 아무것도 못하신 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쩌면 냉면을 드시러 가신 분들도 있었을 것이고, 격동하는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것 같은 것이 현실감이 없어서 우리가 통 속의 뇌고 거기에 어떤 과학자가 전기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신 분들도 있었겠지요. 그런 날을 기념하여 오늘은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어느 새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독한 북방쇠찌르레기입니다. / Hiyashi Haka on Flickr
고독한 북방쇠찌르레기입니다. / Hiyashi Haka on Flickr

오늘 소개할 새는 북방쇠찌르레기입니다. 몸길이는 18cm 정도로, 몸 아래의 포슬포슬한 회색 깃털과 광택을 가진 검은 날개, 그리고 머리와 등의 검보랏빛 반점이 멋진 대조를 보여주는 새이죠. 북방쇠찌르레기는 중국 동북부와 몽골 일부, 한반도 등에서 번식기를 보내는데요. 한국에선 희귀한 여름새이지만, 번식기 외에는 여럿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겨울을 나는 동남아시아 등의 지역에서는 데글데글 잔뜩 모여있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힘겨운 각도로 purple을 보여주는 북방쇠찌르레기 수컷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너무나 violet인 보랏빛쇠찌르레기 수컷입니다. / ⓒ tzmyanmar1, Derek Keats on Flickr힘겨운 각도로 purple을 보여주는 북방쇠찌르레기 수컷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너무나 violet인 보랏빛쇠찌르레기 수컷입니다. / ⓒ tzmyanmar1, Derek Keats on Flickr
힘겨운 각도로 purple을 보여주는 북방쇠찌르레기 수컷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너무나 violet인 보랏빛쇠찌르레기 수컷입니다. / ⓒ tzmyanmar1, Derek Keats on Flickr

북방쇠찌르레기는 영어권에서 purple-backed starling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이는 당연히도 북방쇠찌르레기 수컷의 등에 보랏빛 깃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보랏빛쇠찌르레기(violet-backed starling)라는 굉장히 헷갈리는 이름의 새가 있습니다. 수컷의 깃털이 굉장히 보라색인 이 새는 아프리카 일부 지역과 아라비아 반도에 서식하는데요. 영명으로 검색하였을 경우 검색 결과에 이 두 새가 섞여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생김새는 이름만큼 비슷하지는 않으니 당황하지 말고 잘 살펴보아 구분해내도록 합시다. 암컷의 경우는 수컷보다도 훨씬 더 서로 구분하기 쉬운데요. 북방쇠찌르레기의 암컷은 수컷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깃털의 색이 연하고, 보랏빛쇠찌르레기의 암컷은 보라색 깃털이 전혀 없는 갈색 새입니다.


한 북방쇠찌르레기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 ⓒ Tan Kok Hui
한 북방쇠찌르레기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 ⓒ Tan Kok Hui

이 새들의 대략적인 신상을 알아보았으니, 이어서 이 새들이 한국 근현대사에 어떤 발자취를 어쩌다 어떻게 남기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1964년, 평양에서 한 마리의 북방쇠찌르레기가 포획되며 시작됩니다. 그 새는 발목에 '농림성 JAPAN C7655'라고 적힌 알루미늄 링을 차고 있었죠. 일본에는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북방쇠찌르레기가 일본산 인식표를 차고 있는 것에 의아해하며, 북한의 조류학자 원홍구 박사는 이에 관해 문의하는 편지를 당시 일본 도쿄에 있던 국제조류보호연맹 아시아본부로 보냈습니다.


날아가는 북방쇠찌르레기들입니다. / ⓒ Tan Kok Hui
날아가는 북방쇠찌르레기들입니다. / ⓒ Tan Kok Hui

문제의 북방쇠찌르레기가 차고 있던 인식표는 1960년, 일본의 야마시나조류연구소(山階鳥類研究所)에서 한국에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963년 6월 서울에서 그 인식표를 채운 연구자는, 남한에서 처음으로 북방쇠찌르레기를 발견했던 원병오 박사였죠. 이를 알게 된 원홍구 박사는 원병오라는 이름의 한자 표기를 알려주길 요구하는 편지를 다시 일본으로 보냈고, 인식표를 채운 원병오 박사가 자신의 아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헤어진 부자가 북방쇠찌르레기를 통해서 서로의 생존을 알게 된 것이죠.


북방쇠찌르레기의 다리에 알루미늄 인식표도 그려져 있습니다.북방쇠찌르레기의 다리에 알루미늄 인식표도 그려져 있습니다.
북방쇠찌르레기의 다리에 알루미늄 인식표도 그려져 있습니다.

분단국가에서 아들이 날려보낸 새를 아버지가 발견하여 15년 만에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였다는, 픽션보다도 더 극적인 스토리를 전세계가 주목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부자의 이야기는 북한에선 '쇠찌르레기'라는 제목으로 소설화 되었으며, 1992년에는 '새'라는 제목의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는데요. 이는 최초의 북한-일본 합작 영화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1992년 북한에선 원홍구 박사와 북방쇠찌르레기 기념 우표가 발행되기도 하였는데요. 정작 이 부자는 살아서 다시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북방쇠찌르레기의 뽀얀 배가 돋보이는 사진입니다. / ⓒ Rueangrit Promdam
북방쇠찌르레기의 뽀얀 배가 돋보이는 사진입니다. / ⓒ Rueangrit Promdam

오늘은 그냥 다니던 대로 다니다가 민족 분단의 아픈 역사와 관련된 일화를 얻게 된 새 북방쇠찌르레기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새도 새 나름의 사연이 있어 마냥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겠습니다만, 차라리 새라도 되었으면 하는 많은 노랫말들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는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픽션보다도 더 픽션같이 매끄럽게 잘 풀려가길 바라며 오늘의 포스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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